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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그때 위안부 합의는 정말 '굴욕'이었나

    임민혁 정치부 차장

    발행일 : 2022.06.24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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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일 관계 돌파구를 찾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시작된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래 지향' 의지가 충만해도 현실적인 과거사 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강제징용과 함께 과거사 이슈의 한 축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최근 공개된 '외교부-윤미향 면담' 문건은 수년간 공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수십 년간 일본에 요구해온 핵심은 '사과와 책임 인정, 그에 따른 배상'이었다. 그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의 수용 여부였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협상을 한 당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합의 후 피해자들이 반대하면 자신들이 '매국노'로 몰릴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합의 전에 10차례 이상 피해자 측과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당시 정의연 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은 "나를 (피해자 측) 창구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외교부 문건에 따르면 합의 발표 전날에 협상단은 윤 의원에게 '아베 총리 직접 사죄·반성 표명'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 출연' 등 핵심 골자를 미리 알려줬다. 그 무엇으로도 피해자들 한(恨)을 100% 풀 수는 없겠지만, '일본 정부 예산 출연+총리 사과'는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윤 의원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상가들은 '피해자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 의원은 우리 측 조치, 즉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해결 노력'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 자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부분을 듣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가 굴욕 합의를 숨겼다"고 했다.

    이 부분은 따져봐야 한다. 소녀상이나 국제사회 비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책임 인정, 배상을 외면하는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납득할 만한 사과·배상을 얻어내면 굳이 국제법적 논란을 일으키며 외국 공관 앞에 소녀상을 둘 필요는 없다.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의미 있는 공간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또 사과·배상을 받으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욕할 이유도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만약 일본이 합의를 안 지키고 딴소리하면 그때 다시 소녀상, 국제사회 비판을 동원하면 된다. 이걸 갖고 합의 전체에 '굴욕' 딱지를 붙이는 게 맞을까.

    책임 인정, 배상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면 윤 의원은 사전 설명을 들었을 때 피해자들과 공유하고 '절대 안 된다'고 제동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 등은 "윤미향이 합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합의 발표 후 여론에선 소녀상만 부각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국면이 됐다.

    한번 꼬인 매듭은 계속 엉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전 정부 공격 수단으로 활용했고, 외교부는 전후 맥락을 뻔히 알면서도 '엄청난 흠'이 있었다며 사실상 합의를 파기했다. 이 때문에 가해자인 일본이 "한국이 국가 간 합의도 안 지킨다"고 큰소리치는 상황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뒤늦게 "양국 간 공식 합의가 맞는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가 죽도 밥도 아닌 상태가 된 5년 동안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사이 35명이던 생존자 중 24명이 세상을 떠났다.

    안 그래도 난제인 한·일 문제에 국내 정치, 진영 논리, 여론 몰이가 얽히고설키면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윤석열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기고자 : 임민혁 정치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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