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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 물가 전망 올린지 4주만에 또 상향 시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향후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 경로(연 4.5%)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연간 두 차례 발간하는 '물가 점검 보고서'를 발표한 뒤 기자 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이 3월에 4%를 웃돈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5%를 상당 폭 상회하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5월 물가 상승률(5.4%)은 14년 만에 최고치였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75%로 올리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2월 전망)에서 4.5%로 대폭 끌어올렸다. 이 총재는 이후 불과 4주 만에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4.5%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날 한은이 내놓은 물가 점검 보고서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인) 2008년의 4.7%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은은 오는 8월 경제 전망을 수정하면서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빅스텝은 환율과 이자 부담 고려해서 결정하겠다"

4주 만에 물가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된 이유에 대해 이 총재는 "그사이 적지 않은 물가 여건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치보다 높은 8.6%에 달했고, EU(유럽연합)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안팎으로 크게 오른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이 총재는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며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경기보다는)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6월 물가 상승률도 14년 만에 최고치였던 5월 수준(5.4%)을 넘고, 이 같은 오름세가 하반기에도 확대될 것으로 봤다. 오는 3분기 물가는 분기당 물가 상승률로는 2008년 3분기(5.5%) 이후 처음으로 5%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한은이 처음으로 '빅 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선택할 가능성에 대해 "환율과 가계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결정하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금리 격차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고 내외 금리 차를 어떤 수준에서 방어해야 한다는 이론도 없다"며 "내외 금리 차이가 우리나라만 생기는 건지, 그에 따른 환율과 자본 유출 영향이 어떤지 그때그때 보며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 요인의 56%는 해외발

이 총재는 "해외발 공급 충격의 영향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고유가 상황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높아진 국제 식량 가격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은은 곡물 등 농산물 가격의 폭등을 의미하는 '애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과 요즘은 물가 상승세의 원인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2008년에는 중국의 제조업·부동산업 투자 확대에 따른 원자재 수요 증가가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이었던 반면, 올해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 조치 등에 영향을 받은 공급망 차질 탓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5월 소비자물가의 상승 요인을 나눠보니 56%가 해외 요인이었다.

물가 상승의 국내 요인으로 한은은 정부의 돈 풀기 정책을 지적했다. 물가 점검 보고서는 "가계 소비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난 지원금 등 정부의 재정 지원까지 더해졌다는 점에서 2008년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향후 물가가 최고점에 도달하는 시기와 관련해 이 총재는 "3분기에 정점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시장의 견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올해 성장률이 2% 수준인 잠재 성장률을 웃돌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물가가 오르겠지만 경기 침체를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복합 위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도 이 총재는 "위기가 지금 온다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픽] 연도별 물가 상승률 기고자 :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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