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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좋아한다. 옷이 많다. 혼자 사는 주제에 방 하나를 아예 옷방으로 쓰고 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직업을 궁금해한다. 배우로 오해받는 일은 없다. 그럴 외모는 아니다. 대신 그들은 묻는다. "음악 하시는 분이세요?" 이건 뭔가 개성이 있다는 소리니 듣기 괜찮다. 혹은 묻는다. "옷 장사 하세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패션업계 종사자인가요?'라는 질문이면 기분이 좀 더 고급스러워지려나 싶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옷을 많이 산다. 비슷하게 비싼 옷을 많이 산다. 나도 그렇다. 브랜드만 다른 비슷한 회색 스웨터를 과하게 많이 갖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옷장을 여는 순간 발렌시아가니 프라다니 하는 명품 브랜드의 똑같은 옷들이 윤리적 수치심과 자본주의적 죄책감을 공격한다. 구체적인 가격은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이 글은 주식이나 코인도 하지 않고 글이나 써서 먹고사는 아들의 소비를 걱정하시는 내 어머니도 보고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게시물이 떴다. 메타버스가 미래라며 사명도 '메타'로 바꾼 그는 곧 페이스북 아바타(가상 세계에서 자신을 투영하는 캐릭터) 관련 가게를 새롭게 연다고 했다. 페이스북 아바타를 만든 사람들은 앞으로 발렌시아가, 프라다 같은 명품 회사의 디지털 의류를 구매해서 입힐 수 있다. 저커버그는 "창조 경제(Creative Economy)를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선언했다.

그놈의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현실처럼 구현한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는 우리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메타버스 속 내가 세속적 물질세계의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리라 믿었다. 웬걸, 나는 이제 아바타에 나를 투영하기 위해 디지털 발렌시아가 스웨터를 사게 생겼다. 메타버스는 도토리를 모아 아바타 옷 사 입히던 싸이월드 시절보다 훨씬 진보한 무언가가 틀림없다고 자신을 현혹하면서. 그리고 '창조 경제'라는 단어도 영어로 쓰니 더욱 믿음직하게 들린다고 믿으면서. 기고자 :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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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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