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폴리텍大 '반도체소재응용학과'

하얀 방진복을 입은 학생들이 이물질을 일체 차단한 '클린룸'에서 조용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도체 제조는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전공정'과 웨이퍼를 개별 칩 단위로 분리·조립해 반도체 칩을 제품으로 만들고 테스트하는 '후공정'으로 나뉘는데, 이 클린룸에선 전공정 실습을 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클린룸은 한국폴리텍대학 성남 캠퍼스 반도체 소재응용학과의 다양한 실습 시설 중 하나. 이 학과 학생들은 150여 종 반도체 장비를 직접 사용해 기업 시제품 수준의 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올해 초 이 학과를 졸업하고 판교에 있는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 램리서치에 취업한 문동주씨는 "회사에 가서도 학교에서 배운 과정을 거의 그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에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하자 석·박사급 고급 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교육부는 당장 반도체 대학원을 늘리고, 학부 입학 정원 증원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기업에선 연구·개발 인력뿐 아니라, 생산 공정에서 직접 뛰는 현장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산업기술 인력 수급 실태조사'에서도 부족한 반도체 인력 1621명 중 고졸이 55%(894명)로 가장 많았고, 전문대 20%(316명), 학사 22%(362명), 석사 2.5%(40명), 박사 0.6%(9명)였다.

현장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 중에서도 한국폴리텍대학은 우수 사례로 꼽힌다. 폴리텍대는 고용노동부가 예산 대부분을 대는 국립 직업교육기관으로, 전국에 40개 캠퍼스가 있다. 대학은 반도체 기업들이 몰려 있는 성남·안성·청주·아산 등 4곳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4곳에서 매년 475명의 반도체 인력이 졸업하는데, 취업률이 82~92%에 달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동부하이텍 같은 대기업과 탄탄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 취업하고, 연봉도 보통 4000만원 이상이다.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사립 전문대와 달리 정부가 매년 300억원 이상 예산을 시설·장비에 투입, 현장과 비슷한 실습이 가능한 점이 최대 장점. 삼성전자에서 15년 일한 후 2016년 말 폴리텍대로 옮긴 전동민 반도체 소재응용학과 교수도 "이 정도 시설이면 학생들에게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걸 알려주고 실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다"고 말했다.

특히 성남캠퍼스 반도체소재응용학과가 2년 학위 과정과 별도로 운영하는 10개월짜리 비학위 과정(하이테크)이 큰 인기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을 못 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으로, 전액 무료일 뿐 아니라 식비, 교통비까지 지급한다. 지난해 처음 모집 땐 25명 모집에 69명이 몰렸는데, 올해는 113명이 몰려 경쟁률 4.5대1을 기록했다.

문과를 졸업한 학생뿐 아니라, 반도체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취업이 잘 안 돼서 오는 학생들도 많다. 올 초 4년제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김선향(23)씨는 "학부 시절 장비를 사용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석사생들이 직접 만지고 우리는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직접 장비를 사용한 경험이 없으니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쓸 게 부족했다"면서 "여기에선 직접 장비도 사용하고 경험하니 취업에서 확실한 스펙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씨는 반도체 후공정을 맡는 엠코 테크놀로지 코리아에 입사를 지원, 최종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폴리텍대는 앞으로 반도체 훈련 규모를 크게 확대할 계획이다. 연초엔 입학 정원을 올해 475명에서 내년 59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었지만, 추가 확대 계획을 논의 중이다.

김광희 성남캠퍼스 학장은 "반도체 대기업에만 학생들이 몰리는데, 그 이외 반도체 장비·부품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히든 챔피언들은 인력이 부족해서 '제발 학생들 보내달라'고 한다"면서 "이들을 육성하는 데도 국가가 더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 : 김연주 기자
본문자수 : 193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