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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물탱크 청소로 한나절만 단수(斷水)돼도 괴로운데 일평생 물통에 빗물을 받아다 쓴 섬마을 사람들이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안에서도 낙도(落島)로 분류되는 전남 진도군 외병도 주민들이다. 빗물과 급수선에 의존해 생활용수를 해결하던 이 섬마을에 지난 10일 지하수 퍼올려 수질 정화 해주는 상수도 시설이 생겼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평생 시달렸던 물 부족 고통과 설움이 함께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고 한 주민은 말했다.

으레 공공기관 의전이 그렇듯, 마을 잔치처럼 치러진 이날 외병도 통수식에도 국회의원, 도 부지사, 군수 등 높으신 분들이 찾아와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았다. "국립공원공단은 1년이면 해내는 일을 전남도와 진도군은 수십년간 방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도의 사과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진도군에서 내리 3선하고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진도군수는 "외병도 주민들의 숙원 사업인 지하수 개발과 급수 시설을 설치해 준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 감사하다"고 운을 떼더니 갑자기 본인 퇴임식으로 착각한듯 약속된 발언 시간을 10분 이상 넘겨가며 넋두리를 해댔다. 그래도 주민들은 달걀 대신 박수 세례를 줬다.

외병도처럼 물이 나오지 않아 급수선이 두 달에 세 번꼴로 물을 실어다주는 섬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 21곳 더 있다. 상하수도 같은 기초생활시설 확충은 관할 지자체 업무다. 국립공원공단이 지난해 낙도 지원 사업을 따로 추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외병도 주민들은 지금도 급수 시설 없이 살고 있을 것이다. 이번 외병도에 설치된 지하수 수질 정화 장치는 사실 지자체 의지만 있었다면 해결하고도 남을 문제였다.

그럼에도 섬 사람들이 지자체로부터 외면받은 것은 표에 도움되지 않기 때문일 테다. 현재 외병도 거주민은 '평균 연령 76세' 스무 명이 전부다. 이 마을 막내가 작년 중순 홀어머니 모시러 서울서 살다가 섬으로 돌아온 50대 아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1999년 외병도 주민이 32명이니, '고작 20~30표 받자고 수억원 들여 상수도 설치해줄 순 없다'는 계산이 수십년간 이어져왔을 것이다. 물도 안 나오는 고향을 젊은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외딴섬 사람들의 정주 여건은 점점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숙원 사업 해결해준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 감사하다"는 군수의 말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군민을 챙겨줘 고맙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발언은 불편했지만 한편으론 우리 국민들이 몇 년 새 정치권으로부터 '국민'이 아니라 '이대남' '이대녀' 같은 하위분류체계로 취급돼 일종의 '선택지' 취급을 받았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외병도 주민은 통수식이 끝나고 "이제부턴 편하게 씻을 수 있으니 더는 미안해하지 않고 손주 녀석 놀러오라고 할 수 있겠다"며 웃었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정이든 시정이든 민의를 대표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기고자 : 박상현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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