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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엔 폭스방송사와 월드리그 만들려다 PGA와 갈등도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주도로 신설된 골프 리그 명칭은 'LIV 인비테이셔널 시리즈'다. LIV는 로마 숫자 50(L)과 4(IV)를 합친 것이다. 파 72 코스에서 매 홀 버디를 잡으면 54타이고, 또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처럼 4라운드 72홀이 아니라 3라운드 54홀 경기를 한다는 의미다.

54는 LIV골프 CEO 그레그 노먼(67· 호주·사진)에겐 애증의 숫자, 운명 같은 숫자이기도 하다. 노먼은 1986년부터 1998년 사이 총 331주간 세계 랭킹 1위를 지냈고, PGA 투어 통산 20승을 거뒀다. 메이저 대회는 디오픈에서만 두 차례 우승(1986·1993)했고 준우승을 7번이나 했다. 1986·1996 마스터스, 1986·1995 US오픈, 1986·1993 PGA챔피언십에선 모두 3라운드까지 선두였다가 우승을 놓쳤다.

특히 1986년엔 4대 메이저 모두 3라운드 1위였다. 그래서 그의 경력을 얘기할 때 '토요 그랜드슬램'이란 말이 따라다닌다. 메이저 대회가 LIV처럼 54홀 경기였다면? "세상 무엇보다 더 원한다"던 그린재킷을 포함해 그는 메이저 10승 가까이 달성했을 것이다.

최근 미 워싱턴포스트는 노먼의 일생을 다룬 기사를 냈다. 오랫동안 사우디 측 구상에만 머물던 신설 리그는 노먼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는 1990년대에도 폭스 방송사와 손잡고 최상위 선수들이 대륙을 돌며 경기하는 '월드 리그' 창설을 시도했다. PGA 투어가 강력한 징계 조치를 발표해 무산됐지만,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노먼은 LIV 창설에 주도적·핵심적 역할을 했다.

10대 시절 노먼은 잭 니클라우스(82·미국)에게 푹 빠져 니클라우스처럼 머리를 기르고 스윙을 흉내 냈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노먼이 대학에 들어가 가업을 물려받기를 기대하면서 골프채를 없애고 "골프를 계속하면 넌 실패할 거야"라고 했다. 노먼은 아버지를 밀어붙인 뒤 욕설을 섞어 말했다고 한다. "난 할 거야."

1983년 PGA 투어에 입성한 노먼은 카리스마 넘치는 공격적 플레이로 인기를 얻었다. 우상 니클라우스가 입었던 그린재킷의 영예를 가장 원했다. 실패할 거라던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1986 마스터스 3라운드 선두로 나선 그는 4라운드 65타를 친 니클라우스에게 그린재킷을 내줬다.

1987 마스터스 연장전에선 42m 칩인 버디에 성공한 래리 마이즈(64·미국)에게 졌다. 1993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했지만 연장전 1.2m 파 퍼트가 돌아나와 폴 에이징어(62·미국)에게 패했다. 1996 마스터스 3라운드까지 6타 차 선두였으나 최종 라운드에서 6타를 잃고 무너졌다. 긴장감에 짓눌린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가까운 이들의 조언도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노먼은 "이게 세상의 끝이 아니다.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먼은 별명 '상어' 브랜드를 내세워 사업을 전방위로 확장하며 부를 과시했다. 25년 같이 산 아내와 이혼하고 친구의 아내였던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68·미국)와 2008년 재혼했다. 에버트와 15개월 만에 갈라선 뒤 2010년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노먼에 대해 코치였던 부치 하먼(79·미국)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 레이싱카 같다"고 했고, 어머니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우디 정부가 골프를 이용해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려 한다는 비판에도 노먼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자신은 이미 수십년 동안 비난의 대상이자 "샌드백"이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멘토 니클라우스와도 멀어졌다. 사우디 인권 문제에 관한 질문엔 "어떤 나라든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골프 이외의 것에 휘둘리지 않겠다. 선수 권리를 위해 당당히 서겠다"고 모호하게 답한다.

그는 PGA 투어를 "독점자", 사우디 1억달러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힌 니클라우스를 "위선자"라고 비판하며 LIV 창설을 밀어붙였다. 우승자가 수백만달러를 챙기고 출전자 전원이 상금 받는 걸 보면 수퍼스타들이 합류할 거라며 자신만만하다. 오랜 지인은 "노먼은 모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기고자 :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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