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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中 피아니스트 유자 왕… 오늘부터 5차례 내한 독주회

'무엇이 더 거슬리는가? 그녀의 짧은 의상인가 평론가들의 협소한 시각인가?'

미 워싱턴포스트의 도발적인 기사 제목처럼,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王羽佳·35)은 건반을 누르기 전부터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연주자다. 평소 긴 드레스 대신에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로 무대에 올라서 화려한 테크닉과 무시무시한 타건(打鍵)으로 곧바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23만명. 때로는 외국 평단에서도 그의 복장과 연주를 둘러싸고 가시 돋친 설전이 벌어진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서 그의 복장을 문제 삼으면 워싱턴포스트에선 "젊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패션"이라고 감싸는 식이다.

15일부터 5차례 열리는 내한 독주회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앞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유자 왕은 "음악이 아니라 옷차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건 지극히 성차별적이며 피상적인 저널리즘"이라며 "나도 때로는 그들에 대해서 비평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거침없고 당당한 그의 말에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유자 왕은 "쇼팽부터 스크랴빈까지 음악은 시각적이고 원초적이며 본능적이기도 하다. 왜 연주 복장은 그래서는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1987년생인 그는 다섯 살 연상의 랑랑(郞朗)과 더불어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피아노 신동'으로 꼽혔다. 아홉 살에 중국 베이징의 중앙음악원에 들어간 뒤 열다섯 살에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간 경우.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100회 이상의 연주회를 소화하는 강행군을 벌였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부터 딱 1년간 '피아노 없이(No piano)' 쉬는 시간을 처음으로 가졌다"고 고백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없이 무얼 했을까. 그는 "피아노 말고 모든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유자 왕은 "여섯 살 이후 피아노 없이 살아본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영화·독서·요리를 통해서 나 자신을 인간적으로 더 잘 알게 됐고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칸트부터 버지니아 울프까지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유자 왕은 "처음엔 논픽션과 철학, 심리학책을 즐겨 읽었지만 시와 소설에도 조금씩 관심이 쏠린다. 지금은 에밀리 디킨슨과 캐나다 가수이자 시인 레너드 코언의 시, 달리기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음악가들의 대담집도 읽는다"고 말했다. 그는 "달리기는 싫어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책은 좋아하는 편"이라며 웃었다. 전 세계를 누비는 그의 독서 방법은 '아마존 킨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보이며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중국 등 아시아 연주자들에게는 '테크닉은 훌륭하지만 예술성은 부족하다'는 편견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빼어난 젊은 아시아 연주자가 많은데도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서양인들이) 부러워하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임동혁·김선욱과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한국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지내는 편. 그는 "음악이 경쟁(competition)은 아니지만 이미 아시아 음악인들은 클래식을 넘겨받고(take over)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거침없는 레퍼토리 확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 등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20~21세기 음악으로 연주곡을 넓히는 중이다. 이번 독주회에서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8번부터 쇤베르크와 리게티, 2년 전 세상을 떠난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까지 고전과 현대를 종횡무진한다. 그는 "아직 연주되기를 기다리는 악보는 세상에 많다. 그 작품들을 빛 보게 하는 것도 연주자의 책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의 연습실에선 다시 베토벤의 소나타와 리게티의 난해한 연습곡이 흘러나왔다. 독주회는 15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16일 고양아람누리, 18일 대전예술의전당,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21일 아트센터인천으로 이어진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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