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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추를 쳐다보며

밤이나 낮이나 한결같이 왔다 갔다
(…)언제나 그것만 되풀이하는
시계추의 생활은 얼마나 심심할꼬
가는가 하면 오고 오는가 하면
가서 언제나 그 자리언만
긴장한 표정으로 평생을 쉬지 않고
하닥하닥 걸음만 걷고있는 시계추의 생활을
나는 나는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세월 안에서
세월이 간다고 간다고 감각되어
과거니 현재니
구별을 해가면서 날마다 날마다 늙어가는
인생이 아닌가
늙고는 죽고, 죽고는 나고, 나고는 또
늙는 영원한 길손여객이 아니런가

-김일엽(1896~1971)

벽시계를 보며 이런 상념을 이끌어 내다니. 생활에서 우러나온 주제를 다루는 진정성, 사고의 깊이, 참신한 묘사가 돋보이는 시. 시계추를 의인화해 '하닥하닥 걸음만 걷고있는'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세월의 감각 또한 아프고 절절하다.

일제 강점기에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을 주장하며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했던 김일엽 선생은 동년배 신여성인 나혜석 김명순과 달리 평화로운 인생 후반기를 보냈다. 1927년 조선일보에 "정신적인 정조가 육체적인 정조보다 중요하다"는 글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키고 1년 뒤 수덕사에 입산했는데, 수도승이 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