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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눈가리개 한 경주마처럼 밀어붙였다. 2035년까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뼈대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에 어긋난다는 실무진의 보고가 여러 차례 올라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기본은 5년마다 향후 20년을 계획 기간으로 수립하는 국가 에너지 최상위 계획이다. 에기본의 원전 확대 기조를 그대로 두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같은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공무원들은 "관련 절차를 지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며 에기본부터 수정하자고 보고했지만, 청와대는 이런 원칙 대신 이른바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 꼼수를 택했다. 에기본을 무시한 채 로드맵을 근거로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확정됐고, 문 정부는 2019년에서야 3차 에기본을 입맛에 맞게 뜯어고쳤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국정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탈(脫)탈원전'이다. 이번엔 문 정부가 '탈원전' 대못을 박아놓은 에기본부터 수정해야 하지만 손조차 댈 수 없는 상황이다. 에기본 수립·변경에 관한 조항이 들어 있던 녹색성장기본법을 지난해 탄소중립기본법이 대체하면서 관련 조항이 사라져버린 탓이다. 2020년 말 여야는 근거 조항을 에너지법에 넣는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지만 1년 반이 되도록 법안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에기본 수정이 요원해지면서 산업부는 이른바 '에너지 정책 방향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을 담은 전기본부터 만든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와 그에 따른 논란을 피하기 위해 꼼수로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의 로드맵과 정치권의 무관심 탓에 고육지책으로 준비하는 로드맵은 성격이 다르다. 경제성 조작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건 탈원전과 산업 생태계 회복을 위한 탈탈원전의 시급성도 차이는 크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둘 다 에기본을 무시한 채 추진된다는 비판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지난 정부의 로드맵에 근거한 탈원전 정책을 두고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감사원이 '위법성이나 절차적 하자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지만, 국민의힘이 여당이 된 지금 다시 로드맵을 세워 탈원전 폐기를 추진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에너지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25명 등 여야 의원 31명이 공동 발의했을 만큼 큰 이견이 없다고 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보다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임박한 지금, 에너지법 개정조차 차일피일 미루는 건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미봉책 에너지 정책은 한번으로 족하다. 기고자 : 조재희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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