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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규제에 대해서 모든 부처가 혁파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전 정부의 재정 수단 남용으로 인한 국가 채무 급증과 시장금리 상승에 대외적인 요인에 인한 물가 급등까지 겹쳐 거시 경제정책 수단은 긴축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규제 개혁, 그것도 법을 고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비유한 것을 보면 전봇대, 손톱 밑의 가시라고 표현했던 전임 대통령들과 규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좀 걱정된다. 토지 이용 규제와 가격 규제 같은 암적 규제의 혁파가 시급하다는 말인데 전자는 작년 12월 28일자 지면에서 강조한 바 있어서 오늘은 가격 규제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가격 규제는 경제 운용에 백해무익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이 모두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지난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의 두 번째 축으로 이론화까지 시도했다. 즉 의료·보육·주거·교육·통신·교통비 등을 최대한 억제, 서민 생계비 부담을 줄여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면 내수가 진작되고 투자 활성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전기료나 은행 등 금융회사의 수수료 등도 대대로 단골 삭감 대상이었다.

이 논리는 자가당착이다. 이들 업종도 누군가의 비용인 동시에 누군가의 생업이고 소득원이며, 국민이 여유가 생기면 돈을 더 쓰고 싶어 하는 분야임을 간과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 수준이 되면 양으로는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소득 수준이 2배인 나라에서도 하루에 밥을 여섯 끼 먹거나 각급 학교를 두 번씩 다니지는 않는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소비를 원하면 해외로 나가라고 해서야 내수 진작이 될 리가 없다.

값이 오르는 것은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가격을 규제하면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 텐데 나라는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싸게 공급하라고 한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주택 보급률이 105%에 이르렀는데 2600만 명이 청약예금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를 감행한다.

가격 억제는 해당 업종의 투자 재원을 말려서 그 분야의 공급 확대와 질적 향상을 다 어렵게 만든다. 14년째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대학들이 반도체, AI, 생명과학 등 미래 전략산업의 인재를 키워낼 교수 요원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보다. 대형 병원들이 모두 적자 날 수준으로 의료 수가를 규제하면 병원 산업의 발전을 위한 투자가 지속될 수 없다. 나라라도 나서서 투자를 해야 한다. 한전이 불과 1분기에 7조8000억원 적자를 내게 해 놓고도 미래의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유류세 감면으로 유가를 낮춰 주는 등 재정이 부담을 지는 방식은 해당 업종의 투자 재원을 말리는 폐해는 덜하지만, 가격 규제의 내재적 결점인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혜택을 줘서 더 효과적인 데에 쓸 돈을 허비하게 되는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가격이라는 무차별적인 수단은 어려운 계층을 돕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경유 가격이 너무 높아졌다고 해도 경유 화물차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보조금을 주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에서 별 관심도 없고 고마워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을 줄 이유가 없다. 반값 등록금 공약에서 출발한 등록금 동결의 혜택은 부자도 외국인도 다 누린다. 정책 효과 면에서도 정치적 득표 효과 면에서도 득책이 아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고마워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물가 안정과 성장 동력 회복을 다 이루어 경제에 관한 한 성공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 성공은 가격 규제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전임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4월 16일 그때까지 광범위하게 남용하던 가격 규제를 철폐하고 물가 안정은 오직 재정 긴축, 통화신용 정책과 수입 개방에 의한 공급 확대 등 거시적 수단만으로 달성하기로 한 정책 전환을 전두환 대통령은 굳건히 지켜낸 결과 물가를 2% 수준으로 안정시키고 10% 안팎의 성장률을 이룩하였다.

2100여 년 전 사마천은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서문에서 값이 비싼 것은 곧 싸질 징조이고 값이 싼 것은 곧 비싸질 징조라고 설파했다.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 동서고금에 가격 규제가 실패한 사례는 차고 넘치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기고자 :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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