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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부임 초기 중국 공항에서 책을 압수당한 적 있다. 대만 출장 갔다가 서점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 시인 류샤오보의 시집 한 권을 샀는데 돌아오는 길에 중국 세관 직원에게 적발된 것이다. 중국에선 외국 서적을 개인이 마음대로 들여올 수 없다.

중국의 대형 서점에 가본 외국인은 화려한 인테리어에 한 번, 그에 대비되는 빈약한 책 종류에 또 한 번 놀란다. 소설과 디자인·미술 서적, 잘생긴 앵커들의 자서전은 많지만 정작 오늘날의 중국을 다루거나 중국에 비판적 입장을 가진 책은 찾기 힘들다. 서점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 관련 저작 코너가 마련돼 있다.

중국과 서방 세계의 경계에서 번영했던 홍콩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최근 홍콩 중·고교들은 서적 수백 권을 학교 도서관에서 퇴출시켰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후 홍콩 교육국이 "국가 안전에 저촉되는 서적·간행물을 심의하라"고 지시한 결과다. 책 200여 권을 쓰레기차에 실어 버렸다는 한 학교 도서관 주임교사는 홍콩 신문 명보에 "문제 서적 때문에 고발당해 교사직을 잃을 위험이 사라졌다는 안도감과 분서(焚書)의 주인공이 됐다는 괴로움을 함께 느꼈다"고 했다.

한 학교 퇴출 도서 리스트를 보다가 네덜란드 출신 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가 쓴 '마오의 대기근(1958~1962)'이 눈에 띄었다. 디쾨터는 영국 런던대에서 중국 현대사를 공부하고 홍콩대 석좌 교수를 지낸 유명 학자다. 이 책은 마오쩌둥 집권기 중국을 다룬 그의 '인민 3부작' 가운데 두 번째로 비현실적 경제정책 때문에 4000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강제 노역·굶주림으로 숨진 '대약진운동'을 연구한 책이다. 대약진운동은 중국공산당 스스로 "당의 노선이 정확히 이행되지 않아 발생한 잘못(錯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대약진운동 자체는 중국에서 금기어도 아니다. 하지만 서구 학계와 언론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 책은 중국에선 번역·출판되지 않았고 이제는 홍콩 중·고교 도서관에서마저 퇴출되게 됐다. 이런 흐름은 중국공산당의 역사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중화 민족, 중화 문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도 '중국 모독[辱華]' '서방의 이데올로기 편견'이라는 공격이 쏟아진다.

중국 전문가들은 당국의 검열과 선전 속에서 중화 민족에 대한 자부심만을 갖고 성장한 중국 젊은 층을 우려한다. 일부 네티즌은 올해 천안문 사태 기념일에 당시 희생당한 수백 명의 시위대가 아니라 진압 과정에서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들은 공격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6·25전쟁을 '정의의 전쟁'으로 배우고 "중국은 남의 영토를 한 번도 침범한 적이 없다"는 선전을 역사의 전부로 믿는 중국인이 늘어나는 건 중국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기고자 :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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