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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22번째 최다 우승 기록

라파엘 나달(36·스페인·세계 5위)은 왼발에 시한폭탄을 달고 살았다. 왼 발바닥에 원인 모를 통증을 느낀 뒤 뮐러-와이즈병을 진단받은 게 불과 열아홉 살 때다. 관절이 변형되며 신경을 짓누르는 희소병이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잘 관리해야 하는데, 나달은 그간 발바닥을 지탱해주는 깔창과 진통제로 통증을 억누르며 선수 생활을 했다.

그 폭탄이 마침내 터졌다. 나달은 지난해 8월 왼발 부상이 재발하며 시즌을 조기 중단했다. 재활 후 돌아와 올 시즌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는 듯했지만, 지난 3월 갈비뼈 피로 골절 부상을 당했고 5월엔 설상가상 다시 고질적인 발바닥 통증에 발목이 잡혔다. 나달은 절망했다. "나는 부상을 당한 게 아니다. 나는 부상과 함께 사는 선수다."

5일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도 그는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클레이코트의 황제'다운 위엄을 보였다. 나달은 노르웨이의 캐스퍼 루드(23·세계 8위)를 세트스코어 3대0(6-3 6-3 6-0)으로 제압하며 자신의 14번째 프랑스 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테니스 역사를 통틀어 단일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이다. 그는 지난 17년간 14번 이 대회 결승에 올라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1972년 34세 나이로 우승한 안드레스 히메노(스페인)를 제치고 이 대회 최고령 챔피언이 됐다.

지난 1월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며 라이벌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세계 1위)와 로저 페더러(41·스위스)를 제치고 남자 테니스 역대 최다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을 세웠던 그는 이 기록에 1승을 더해 22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나달은 1세트부터 주 무기인 톱스핀 스트로크를 앞세워 루드의 약점으로 꼽히는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루드는 결승에 앞서 치른 6경기에서 52개의 서브 에이스를 기록했지만, 이날 단 한 개도 얻지 못했고 범실을 61개나 저지르며 무너졌다. 루드는 경기 후 "롤랑가로스 결승에서 나달을 상대하는 것은 테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다. 내가 첫 희생양이 아니다"라며 "당신은 진정한 영감의 원천이다. 더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우승을 축하했다.

나달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야 "64강전 이후 거의 걸을 수 없을 만큼 발 상태가 악화했다"며 "이후 매 경기 신경 마취 주사 여러 대를 맞고 발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로 경기에 나서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발 상태에 대해 함구했다.

나달의 몸 상태와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우승이 그의 마지막 프랑스 오픈 우승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달 본인도 수차례 "이 대회에서 치르는 모든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달 27일 열리는 윔블던을 앞두고 발목 치료에 돌입한다. 고주파 열치료를 통해 발등 쪽 신경이 뇌로 보내는 통증 신호를 차단하면 장기적으로 통증을 없앨 수도 있다. 기고자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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