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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태어났다. 바닷가 언덕 동네에는 부잣집이 많았다. 나는 언덕 아래 5층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에 산다는 건 당시에도 꽤 우쭐하는 일이긴 했다. 사람들은 요즘 애들이 아파트 값으로 친구를 구분한다며 한탄한다. 1980년대에도 아이들은 그런 걸로 우쭐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세속적인 동물이다.

제법 큰 건설 회사 아들 집도 언덕 동네에 있었다. 대문을 넘어서자 잔디 정원이 펼쳐졌다. '기생충'에 나오는 것보다 다섯 배는 컸다. 식모가 과자를 내왔다. 미제 과자였다. 함께 들어 있는 피넛 버터 소스에 찍어 먹는 과자는 놀라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났다. 어머니가 사오시는 모든 과자가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인생 최초로 느낀 타인의 삶에 대한 압도적 부러움이었다.

서로의 삶을 더 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발명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인류를 평등하게 연결하리라 믿었다. 연결은 무슨. 전 지구적 사생활의 연결은 오히려 우리를 정치적 확증 편향에 밀어 넣고 부러움도 확증 편향시켰다. 상상할 수 없던 규모의 횡령 사건들도 일상의 부러움이 낳은 죄악일 것이다. 대형 은행과 대기업에서 터져 나온 새로운 시대의 횡령은 과거의 횡령과는 좀 다르다. 범인들은 회사로부터 잠시 돈을 훔쳤다 주식과 암호 화폐에 투자한 뒤 불려서 돌려주겠다는 대담하고 순진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 돈을 챙기자마자 바베이도스로 도망가지도 않았다. 어떻게 봐도 '어른의 횡령'은 아니다.

그들은 잘살고 싶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속 이웃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코인 떡상으로 강남 건물을 산 풍문 속 친구의 친구의 지인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이웃의 삶은 사실 인스타그램 속에 전시되는 삶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말이다. 어쩌겠는가. 우리의 아이 같은 혀는 한 번 맛본 미제 피넛 버터 소스 과자의 맛을 좀처럼 잊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으로 포르셰 차주들의 삶을 검색한다. 이 칼럼을 얼마나 더 쓰면 포르셰 타이칸을 풀옵션으로 살 수 있을지 계산하면서.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5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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