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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창업주 파리에 미술관 개관

"찰스 레이의 조각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제가 가장 핫(hot)한 곳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꼽히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상공회의소)-피노컬렉션'에서 만난 유럽 관광객들은 미국 출신 조각가 찰스 레이(69)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며 즐거워했다.

지난해 5월 파리 1구 퐁피두 근처에 문을 연 이 미술관은 과거 증권거래소와 상공회의소로 썼던 건물. 구찌, 보테가 베네타 등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케링 그룹의 창업주 프랑수아 피노(86)가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8세기 곡물 보관소로, 19세기 소설가 에밀 졸라가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서 깊다. 1975년 건물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피노 창업주는 피카소부터 이우환까지 현대 미술 1만여 점을 수집했다. 유명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까지 인수했다. '파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보란 듯이 깃발을 꽂은 것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유명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에게 기존 건물은 해치지 않으면서 다다오의 상징인 노출 콘크리트는 살리는 방식으로 3년에 걸쳐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1만500㎡(약 3176평). 19세기에 완성됐다가 상당 부분 소실됐던 천장 프레스코화는 복원 전문가 피에르-앙투안 가티에가 되살려냈다. 리모델링에만 1억7000만달러(약 2128억원)가 들었다. 마치 로마 원형 경기장 속에서 파리 베르사유 궁전의 천장 벽화를 보면서 뉴욕 현대미술관 작품을 즐기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미술관은 명품 업계 양대 산맥끼리의 '경쟁'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프랑스의 또 다른 명품 기업인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지난 2014년 파리 외곽 볼로뉴 숲속에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을 열었기 때문.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가 12개의 닻을 형상화해 지은 건물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개관한 지 8년이 됐지만 매년 100만명 이상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다.

둘의 자존심 대결이 마치 부(富)의 과시와 경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최근 '과거 유럽의 예술 수도였던 파리가 다시 정상의 자리를 되찾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둘의 미술관 경쟁이 파리의 부흥을 이끄는 축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 두 미술관을 축으로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파리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1964년 발간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작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를 인용하면서 마치 1920년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였던 시절이 재현되는 듯 보인다고 했다. 당시 살롱이 예술가들 교류 무대였다면, 이제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들 양대 산맥이 선보인 미식(美食) 대결이 뜨겁다. 이번엔 구찌가 먼저였다. 지난 3월 서울 이태원 플래그십스토어(대형 단독 매장)에서 선보인 '구찌 오스테리아'는 미슐랭 3스타 셰프인 마시모 보투라가 이끈다. 오스테리아는 이탈리아 가정식 레스토랑이라는 뜻. 메인 다이닝룸 28석, 테라스 36석으로 2주전 예약 오픈 사이트를 열자마자 4분 만에 한 달 치가 마감됐다. 5코스 12만원, 7코스 17만원 등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지금도 매달 예약 오픈 개시 5분 만에 한 달치가 마감된다고 한다.

루이비통이 청담 대형 단독 매장에서 5월 4일부터 이달 10일까지 한시적 운영하는 '피에르 상 at 루이비통' 역시 온라인 예약을 열자마자 5분 만에 전체 마감됐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한국계 프랑스인 피에르 상 보이예가 한국적 색채를 담은 음식을 선보인다. 런치 코스 13만원, 디너 코스 23만원인데 역시 예약은 마감됐다. 김정미 패션 평론가는 "단순히 젊은 세대의 플렉스(flex·뽐내기)라기보다는 이제는 경험이 소유이자 자산인 시대가 됐다"면서 "팬데믹으로 지친 이들에게 미술관과 미식 경험은 예술적 허기를 채우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루이비통(LVMH) vs 구찌(케링) 기고자 : 파리=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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