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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내셔널갤러리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흔히 보았던 '고흐 스타일'이 아니어서입니다. 고흐의 걸작에 자주 등장해 특유의 광기와 우울함을 자아내던 선홍색, 노란색, 짙은 파란색이 아니라 밝은 민트, 그러니까 하늘색과 연두색 중간 어딘가에 있는 물감으로 그린 작품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기 때문이죠. 물감을 두껍게 바른 뒤 거친 붓질로 휘몰아치는 화법은 똑같은데, 고흐답지 않은(?) 여리고 사랑스러운 색상이었다고 할까요. '장미가 든 꽃병' '밀밭의 젊은 여인' '롤린의 아기' 등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같은 질감으로 그려진 작품들 앞에 한참을 서서 낯선 색(色)이 주는 감동을 만끽했지요. 그러고 보니 고흐가 동생 테오와 요한나 사이에 태어날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봄의 희망과 설렘을 담아 그린 '아몬드 나무'도 민트색 하늘이 배경이네요. 대부분 고흐가 자살한 해인 1890년에 그려진 그림이라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고흐의 민트 그림이 떠오른 건 '위닝 컬러(Winning Color)'라는 책을 읽다가였습니다. '사람의 욕망을 움직이는 10가지 색의 법칙'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뜻밖에도 저자가 제가 예전에 만나 인터뷰한 한국 여성이었지요. 9년 전 그는 우리 재래시장의 '비주얼'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시커먼 비닐봉지 색깔 하나만 바꿔도, 매대의 상품 진열 순서만 바꿔도 쪽박 날 장사가 대박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귀가 솔깃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이번에 펴낸 책에 다시 눈길이 간 건, '10대들은 왜 검은색에 열광하나'라는 소주제 때문입니다. 어릴 땐 "핑크 핑크"를 입에 달고 살던 딸이 중학생이 되자 교복을 제외하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아니면 흰색으로 무장해서 늘 궁금하던 차였는데, 책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를 대변한다.' 언제나 고양이 눈을 뜨고 엄마 말이라곤 징그럽게도 안 듣는 딸이 왜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지요.

책은 스타벅스의 초록, 마켓컬리의 보라, 이케아의 노랑과 파랑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도 알려줍니다. 아, 한 가지가 빠졌네요. 미스터 트롯의 빨강^^. 그래서 이번 주 뉴스레터에선 인간 의사 결정의 85퍼센트를 좌우한다는 '컬러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래 QR코드와 인터넷 https://page.stibee.com/ subscriptions/145743을 통해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기고자 :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27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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