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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숨겨 대서양 일대로 수출

미국과 유럽의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가 원산지 세탁과 해상 환적(換積·옮겨싣기) 등 교묘한 방법으로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1일(현지 시각) 보도에 따르면 특히 인도 기업들이 이런 수법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이날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에 입항한 한 유조선에서 대량의 러시아산 휘발유(알킬레이트)가 하선(下船)됐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대형 에너지 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가 자사 석유 제품을 팔기 위해 전세를 낸 배였다. 화석 연료 유통 및 판매망을 연구하는 핀란드의 '에너지와 청정공기 연구센터'는 "릴라이언스가 할인된 값에 구매한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뒤, 이를 원유 현물(단기 계약) 시장을 통해 미국 등 서방 바이어들에게 내다 판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WSJ는 "러시아산 석유가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는 사례"라며 "인도 정유회사들을 통해 원산지를 감춘 뒤, 수에즈 운하를 거쳐 대서양 일대로 수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힘들어지자 인도와 중국, 동남아 국가 등 개발 도상국에 국제 시세보다 30%가량 싼값으로 원유 판매를 확대해 손실을 벌충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하루 3만 배럴에 불과했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이 하루 80만 배럴로 약 27배 폭증했을 정도다. WSJ는 "이 중 상당량이 서방으로 몰래 수출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도 정제유 제품의 유럽 수출은 전 분기 대비 33%, 미국 수출은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과 이란 등이 활용해온 해상 환적 수법도 동원되고 있다. WSJ는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젠 1호'라는 유조선이 지난주 서아프리카 해상에서 초대형 유조선 '로렌 2호'와 접촉, 해상에서 원유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로렌 2호는 이후 지브롤터를 거쳐 중국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스라엘 선박 정보 기업 윈드워드는 WSJ에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선박들이 선박 위치를 알리는 위치정보서비스(GSP) 장치를 끄고 항해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며 해상 환적 등의 불법 행위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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