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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 신현송 BIS 조사국장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봅니다. 1973년의 유가 상승보다 현재의 유가 상승 폭이 작기 때문입니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31일 본지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0년대 이후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져 석유 의존도가 이전만큼 높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책이나 공조 체계가 과거보다 견고해진 점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 92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조사국장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2006년에 "2년 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해 실제로 위기가 발생한 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인플레이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들은 낮은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을 기울였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제가 코로나 침체를 벗어나 빠르게 회복하면서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고, 원자재 가격 상승이 더해져 물가가 상승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인플레이션 시기에 보인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한쪽의 가격 상승이 다른 쪽으로 전이되고, 물가와 임금이 주고받듯 함께 오르는 조짐도 보인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지 않다면 안심해도 된다는 뜻인가?

"방심은 금물이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높은 변동성은 실물 경제에 여러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세계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하기 전에 신속하게 물가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초저금리와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부채가 급증했다.

"향후 세계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선진국들이 통화 긴축 정책을 펼 경우 신흥국들은 여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경험에 미뤄볼 때 외화 부채가 많고 재정 건전성 등 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약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금융 위기 또는 채무불이행을 경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채 부담을 진 가구는 금리 상승에 특히 취약하며, 주택 대출 금리가 주로 변동 금리인 국가는 단기 금리 상승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다. 금리가 오를 때 경기 침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

―주가·금리 등 금융 시장 불안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최근 주식·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주식과 채권 가격이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채권 값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가상 자산까지 떨어지는 '세 가지 악재(triple whammy)'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인플레이션이 통제될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냉전이 뚜렷해지고 세계화가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완만한 속도의 세계화(slowbalisation)'가 자주 언급된다. 이는 세계화의 종식이 아니라 진화다. 세계 경제 양극화를 피하고 보다 건실한 세계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상 화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가상 자산은 '탈중앙화'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앞세우지만 실상은 투기성 코인 판매를 통해 지탱된다는 구조적 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런 가상 자산은 주로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신규 투자자의 유입으로 지탱된다. 소셜미디어나 언론 보도에 힘입어 가격이 올랐지만 근본적인 가치는 없다. 통화의 본질은 신뢰(trust)인데 가상 자산은 가치 저장 또는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안전하지 않다."

―코인 급락이 다른 자산 거품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가상 자산의 규모가 커지고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연결성이 강화됨에 따라, 금융 시스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위험 발생 확률은 높지 않지만, 점차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상 자산 투자자들은 많은 부채를 안고 투자하는데, 가상 자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기존 은행처럼 충격을 완화해줄 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또 가상 자산은 국경을 초월해 거래되므로, 국제적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올해 한국이 25년 만에 '쌍둥이 적자(경상·재정수지 동시 적자)'를 겪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경상 적자가 생기면 대외 부채 상환 압력이 커지고 환율도 상승(한국의 경우 원화 가치 하락)한다. 이로 인해 대외 차입 비용이 상승한다. 환율이 상승하면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는데 특히 (한국 같은) 원자재 수입국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국 국가 채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유지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 부채를 사들인 국가들은 화폐 가치의 폭락과 매우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꾸려 채권을 발행하면 해외 투자자들이 많이 사 가는데, 외국인들은 유사시 채권을 팔고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우 장기 금리가 상승해 국내 자금 시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

―2000조원에 육박한 한국 가계 부채의 위험 수준은?

"부채는 지금 당장 지출을 가능하게 하지만 미래에 이를 갚아야 하는 부담을 야기한다. 가계 부채는 세대 간 분열과 사회적 문제도 초래한다. 기성세대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혜택을 보지만, 젊은 세대는 주택 구입을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신현송은 누구인가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옥스퍼드대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거쳐 2014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 조사국장으로 임명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였던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재직할 때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해외 자본 유출입을 관리하는 거시 건전성 정책을 마련했다. 이 정책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인정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그래픽] OECD 주요국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그래픽] OECD 물가상승률 기고자 : 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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