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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한전은 자선사업가인가

    전수용 산업부 차장

    발행일 : 2022.05.31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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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전은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서 소비자에게 절반 가격에 판다. 그래서 작년 5조8000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는 1분기에만 7조8000억원 적자다. 역대 상장사 통틀어 최악의 실적이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47.3%다. 100원짜리 물건을 47원 손해 보고 팔았다는 얘기다. 한전이 올 들어 채권을 찍어 빌린 돈은 이미 작년 한 해 치를 넘겼다. 연간 이자만 2조원 넘게 내야 한다. 하루 63억원꼴이다. 올해 20조~30조원 적자를 내고, 내년엔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만한 적자를 내고도 멀쩡한 기업은 없다. 그런데도 한전은 반값 세일을 계속할 참이다.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이런 착한 회사가 또 있을까 싶다.

    한전이 최악의 상황에 놓인 건 두부 값(전기요금)이 콩 값(연료비)보다 싼 왜곡된 전기요금 탓이다. 지난 정부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태양광·풍력을 확대하면서도 전기요금을 그대로 뒀다. 연료비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올려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데 정부는 모른 척했다. 임기 전반기엔 무리한 탈원전 비용 부담을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국제유가·석탄 가격이 폭등할 땐 선거를 의식해 스스로 만든 연료비 연동제까지 없던 일로 만들었다. 고물가에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서민경제가 파탄 난다는 게 이유인데 한전이 먼저 파탄 나게 생겼다. 한전은 정부 지분이 51%다. 최대 주주가 자기 회사를 제대로 망친 셈이다.

    왜곡된 전기요금은 한전만 망가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무국(無國)인 우리나라에서 연료값이 오르면 전기를 덜 쓰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를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신호는 가격이다. 요금을 올려 전기 소비를 줄이게 해야 하는데 소비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줬다. 왜곡된 전기요금은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계획, 탄소 중립 등 에너지 정책은 물론 물가지표, 통화정책 결정에도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한전은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고 한다. 제대로 팔릴 리가 없고, 팔리더라도 헐값 매각이 뻔하다. 사업성이 좋은 자산 매각은 미래 수익을 갉아 먹을 뿐이다. 정부는 한전이 발전 자회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외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고, 민간 발전사 팔을 비틀어 한전 적자를 줄이겠다고 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고, 변죽만 치는 것이다.

    연료비 급등에 태양광·풍력 발전 확대, 송·배전 설비 투자까지 한전 빚은 계속 쌓일 테고,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메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한전의 자체 신용 등급을 내리면서 정부의 특별지원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물 쓰듯 많이 쓴 기업·가정의 전기요금을 국민에게 십시일반 부담시키고, 전기 아껴 쓴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한전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밖에 답이 없다. 영국의 전력회사는 작년 10월에 12%, 올 4월에 54% 요금을 올린 데 이어 오는 10월에도 40% 넘게 인상할 예정이다. 한전이 올해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전기요금을 40% 이상 올려야 한다. 물가와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 소비자 불만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요금 인상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이용자 비용 부담 원칙을 세우고, 저소득층·소상공인 같은 에너지 취약계층에는 보조금을 통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이 코앞이다. 전기요금 숙제는 시간을 끌수록 실타래가 더 꼬인다. 전기요금 정상화와 함께 한전 참사의 원인을 따져 책임도 물어야 한다.
    기고자 : 전수용 산업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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