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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5) '역(逆) 과학적' 방법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발행일 : 2022.05.31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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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는 데이터, 법칙과 이론, 모델, 시뮬레이션, 통계 등을 사용한다. 그런데 데이터는 불완전하고, 법칙과 이론은 근사치이다. 모델은 주관이 깊이 개입되며, 시뮬레이션과 통계는 항상 논쟁의 대상이다. 그래서 세상과 100% 딱 맞아떨어지는 과학은 없다. 자신의 이론이나 실험이 현실과 100% 일치한다고 한다면, 그는 고등학교용 교과서 과학을 하는 사람이거나 사기꾼일 것이다.

    2001년 뉴욕에서 9·11 참사가 터졌을 때, 스티븐 존스 같은 물리학자는 건물의 잔해 속에서 화약에 사용되는 테르밋(thermite) 분말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이것이 미국 정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미리 화약을 설치하고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히는 순간에 맞춰 폭발시킨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런 음모론에 동조하는 뉴욕 시민이 한때 절반에 육박했지만, 테러를 조사한 공식 보고서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 주장이 참이라면 수백~수천㎏의 폭약과 전기 설비를 건물로 반입하고 벽에 이를 숨겨놓는 공사를 했어야 한다. 음모론은 상식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얼핏 보면 음모론은 과학적 방법과 닮은 방식으로 우리를 설득한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끝까지 추적해 설명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개입을 상정하고, 이를 지지하는 증거만을 골라내고, 다른 증거들을 무시하면서, 상식과 어긋난 가정을 도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MIT의 토머스 이거는 음모론이 권력 집단의 숨겨진 의도를 먼저 가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증거만을 선별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를 '역(逆·reverse)과학적 방법'이라 이름 붙였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한 결론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잠수함 충돌설이 계속 고려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일부 증거만을 선별하고 다른 증거들과 상식에 눈을 감는 '역과학적 방법'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번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기고자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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