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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코로나에 숨통 틔워준 피렌체의 '와인 창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발행일 : 2022.05.31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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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바에(Babae)는 피렌체 올트라르노에 있다"고 호텔 컨시어지가 말했다. 올트라르노(Oltrarno)는 '아르노(Arno)강 건너편'이란 뜻으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 이남 지역을 말한다. 두오모, 시뇨리아 광장 등이 있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중심이던 북쪽과 구별해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걸으니 산토스피리토 거리에 있는 식당 바바에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식당 외벽에는 어깨 높이 정도에 작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코로나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방문한 피렌체에서 바바에를 일부러 찾아간 건 이 구멍 때문이었다. 높이 30㎝, 폭 20㎝ 정도에 위쪽이 둥그런 아치형 구멍으로, 식당 출입구를 작게 줄여놓은 듯했다. 구멍 주변 보도에 서서 와인을 홀짝이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을 통과해 구멍 앞으로 다가갔다. 구멍 안쪽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벨이 울렸다.

    "챠오(안녕하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식당 안쪽에서 종업원이 구멍 밖으로 내다보며 활짝 웃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주문한 와인을 구멍으로 내밀었다. 와인 잔을 건네준 종업원 손에 와인 값을 쥐여줬다. 코로나 이후 화제가 되고 있는 피렌체의 명물, '부케테 델 비노(buchette del vino)'. 우리말로는 '와인 창문'이다.

    와인 창문은 피렌체에서 오랫동안 잊혔던 시설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오직 토스카나에만 있다. 특히 피렌체에 집중됐다. 그동안 인식 못 했지만, 이번에 피렌체 시내를 걷다 보니 정문 왼쪽이나 오른쪽 벽에 와인 창이 난 저택이 꽤 많았다. 현재까지 남은 것만 피렌체 시내에 150여 개, 피렌체를 포함, 토스카나 전체에 300개 정도라고 한다.

    과거 피렌체 귀족들은 자기들 소유 포도원에서 생산한 와인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했다. 코시모 1세 데 메디치(1519~1574) 토스카나 대공(大公)이 와인 직거래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1559년 기록이 있다. 귀족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귀족들은 세금 내지 않아도 되고, 서민들은 중간상 거치지 않고 저렴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서민들이 자기 저택을 들락거리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서민들도 높은 분 집에 드나들기가 마음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와인 창이 탄생한 이유다.

    와인 창은 17세기 흑사병이 피렌체를 덮치자 빛을 발했다. 도시가 봉쇄되고 상업 활동이 중단됐지만, 와인 창만은 계속됐다. 와인 플라스크를 구멍을 통해 내놓으면 사람들이 집어 갔다. 동전은 구리 국자에 받아 식초에 던져 넣어 소독했다. 당시 와인은 오늘날처럼 기호 음료가 아닌, 물보다 안전한 일상 음료. 1인당 하루 1L 이상 마시던 시절, 와인은 술이라기보단 생필품이었다. 와인 창이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생존에 얼마나 기여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와인 창과 이를 통한 와인 거래는 19세기까지 이어졌으나, 알코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쌓이며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유통·관리가 엄격해졌다. 허가증 없이는 와인 판매가 금지됐다. 무용지물이 된 와인 창은 벽돌을 쌓거나 판자로 막았다. 1966년 피렌체를 휩쓴 대홍수 이후로 흔적도 없이 유실되기도 했다. 차츰 와인 창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 피렌체 사람들조차 와인 창을 모르게 됐다.

    와인 창이 재조명된 건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 바바에는 오랫동안 잠겨 있던 와인 창문을 열어젖힌 최초 가게다. 의도했던 건 아니다. 지난 2019년 6월 식당을 개업하면서 주인들은 피렌체의 오래된 전통인 와인 창을 되살리기로 했다. 반 년가량 뒤인 2020년 초 코로나가 이탈리아를 뒤덮었다. 400여 년 전 흑사병 유행 때처럼 피렌체 모든 식당과 상점이 문 닫았지만, 바바에는 와인 창을 통해 와인과 칵테일 등을 손님들에게 비대면 판매했다.

    "400년 만에 전통이 되살아났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코로나 관련 뉴스는 처음"이라며 세계적 화제가 됐다. 아이스크림 가게 '비볼리', 또 다른 식당 '브라케' 등 피렌체 시내 다른 가게들이 속속 바바에를 따라 와인 창문을 다시 열었다.

    비싸지 않은 와인이지만 피렌체 골목길에 서서 마시니 별다른 맛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지만, 되살아난 와인 창은 열린 채로 그대로 남아도 괜찮겠다 생각하며 다시 한 모금 와인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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