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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36) 한 뿌리서 나온 세 종교…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중)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발행일 : 2022.05.31 / 여론/독자 A2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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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교엔 원죄 사상 없어…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삶이 곧 죄"

    이슬람교만큼 빠르게 성장한 종교는 없었다. 지금도 이슬람교의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613년 무함마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장점을 따서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똑같은 유형의 '움마 공동체'를 만들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움마 공동체가 지향하는 정신이 '형제애와 평등정신'인데, 이는 유대인 공동체의 체다카(약자를 돌보는 정신), 미슈파트(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평등)와 동일하다.

    이처럼 움마의 중심에는 피보다도 강한 무슬림 '형제애'와 성별, 인종, 계급을 초월한 '평등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움마 공동체는 사막사회에 뿌리 깊었던 남존여비 등의 차별을 하지 않고, 마지막 한 톨까지 나눠 먹는 정신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유대인의 공동체는 배타적이지만 움마 공동체는 개방적이었다.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다"라고 암송하는 순간, 누구나 형제가 되고 움마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를 반긴 건 사회적 약자인 힘없는 서민과 소외계층이었다.

    이슬람교, 형제애·평등 내세워 확장

    사막의 척박한 환경 속에 아랍 부족들은 툭하면 이웃 부족을 약탈하거나 전쟁을 벌였다. 그런 호전적인 부족들을 하나로 묶어 움마 공동체로 만든 게 무함마드였다. 공동체 정신이 이들을 순한 양으로 변모시켜 움마가 이슬람의 원형이 된다.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총체적 사회 시스템이 됐다. 움마는 형제애로 똘똘 뭉친 신앙 공동체이자 이슬람교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명을 지닌 신도 공동체란 의미로 사용됐다. 움마 공동체와 신정일치의 강한 종교적 지도력이 이슬람교 성장의 비결이다.

    이처럼 교세를 키워가는 이슬람교와, 이 종교의 모태인 유대교와 기독교 등 세 종교 간 대표적 차이는 '구원에 대한 견해'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속죄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반면 유대교는 율법을 실천하고 선행을 하면 구원된다고 생각한다. 이슬람들도 선하고 바른 행동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은 '실천적 다섯 기둥'이라 불리는 종교적 의무 5행(行)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는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선지자이다"라는 신조를 암송하고, 매일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기도하며, 가난한 자를 위한 자선, 라마단 기간 중의 금식, 평생 한 번 이상의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대교는 '율법의 실천에 의한 구원'을,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을,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렇게 된 밑바탕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유대교가 창시되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 모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는 다신교의 우상숭배가 일상적인, 삶의 방향이나 지침이 없는 무질서한 사회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유대인을 선택해 그들에게 올바른 삶을 위한 크고 작은 것들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곧 613개의 성문율법과 구전율법이었다.

    그러던 것이 유대교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엄격한 안식일 준수 등 너무 율법에 얽매이다 보니 율법의 본질보다는 형식이 더 우선되었다. 이를 바로잡은 분이 예수라는 것이 기독교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복음인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반면 기독교보다 600년 뒤에 탄생한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성경을 자기들 입맛대로 변질, 타락시켜 신이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하늘에 있는 성경 원본을 다시 내려주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는 왜곡되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이슬람교 교리는 단순하게 여겨질 만큼 명료하게 정립되었다. 이슬람교 교리는 '이만'(6가지 종교적 신앙)과 '이바다'(5가지 종교적 의무)를 기본으로 한다. 6신(信) 5행(行)이라고도 불린다. 5행을 신앙생활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으로 보아 '아르칸'(기둥들)이라 부른다. 이슬람은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 이 다섯 가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이슬람이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유대교는 율법, 기독교는 믿음 중시

    세 종교의 원죄(原罪) 사상도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원죄'라 한다. 이 죄가 하도 무거워 자손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 '원죄 사상'이다. 선악과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주는 과일이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이제 사람들이 우리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끝없이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보혈로 대속했기 때문에 원죄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슬람교에는 원죄 사상 자체가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 중의 하나가 '대속(代贖) 사상'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했다는 대속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의 사건을 통해 대속에 관한 이슬람교의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하느님께서 크게 꾸짖으시자 아담은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면 실로 저희들은 잃어버린 자가 될 것입니다'라며 용서를 청했다. 이에 하느님은 아담을 용서해 주셨다. 이처럼 아담은 그의 죄를 용서받음에 있어 제3자가 필요치 않았다. 이슬람교는 아담이 용서받았기에 그의 자손에게 원죄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유대교는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 죄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 죄가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원죄 사상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죄란 과거에 구속되지 않고 현재에 구속된다. 유대교에선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삶이 죄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이 죄다.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에게 불순종한 것이 죄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내가 하느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죄인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하느님이 인간에 거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유대교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죄다. 주어진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으름'과 '무능력'이 죄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자기 안의 달란트(재능)를 찾아내어 힘을 다하여 이를 키워 나가지 않아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신앙이란 자기 자신 속에 내재된 하느님의 형상을 찾아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다.

    [두 가지 희망 속에 사는 유대인]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2500년 전부터 굳게 믿어


    유대인들은 2500년 전부터 두 가지 희망 속에 살고 있다. 첫 번째가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메시아가 가져올 '올람 하바' 세상이다. '지금 시대'는 히브리어로 '올람 하제'이며 '장차 다가올 세상'은 '올람 하바'다. 그런데 이 '올람'이라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개념이다. 유대인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그들의 영혼이 모두 모세와 같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중히 여기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올람'은 어떤 일이 내일로 계속 이어질 경우 '지금'을 말하면서 또한 미래, 곧 영원을 말하기도 한다. 이 세상 삶이 끝이 아니라 이 세상은 주님이 오실 그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과거가 살아 숨쉬는 '올람 하제'를 살면서 동시에 미래에 다가올 '올람 하바'의 시간을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개혁파 유대교는 어느 날 홀연히 출현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유대인 하나하나가, 곧 유대 민족 전체가 하느님의 일을 거들어 이 세상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기고자 :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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