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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어떤 시] (72)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꽃(Flower in the Crannied Wall)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발행일 : 2022.05.30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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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꽃(Flower in the Crannied Wall)

    갈라진 담벼락에 피어난 꽃이여,
    틈새에서 너를 뽑아
    내 손에 들었네,
    여기 너의 뿌리며 모두 다 있네,
    작은 꽃-네가 무엇인지,
    너의 뿌리와 전부를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

    길을 걷다가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 황홀해하던 기억이 누구든 있을 것이다. 벽이든 아스팔트 바닥이든 자그마한 틈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는 그 강인한 생명력. 꽃밭에 오종종 모여 있는, 화훼 전시장에 진열된 화려하고 늠름한 꽃들보다 우연히 발견한 시멘트 틈새의 꽃이 내겐 더 아름답다.

    살아있는 꽃을 그는 왜 꺾어야 했나. 한 송이 꽃을 통해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을 말하는 철학적인 시의 2행에 나오는 동사 "뽑아 (pluck)"가 거슬렸다. 테니슨이 이 시를 쓴 해는 1863년, 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꽃 한 송이를 낱낱이 해부하면 그 종의 기원과 생명의 비밀까지도 인간이 알 수 있다는 과학적 낙관주의가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윈(Charles Darwin·1809~1882)은 테니슨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벽에 핀 작은 꽃도 뽑아 철저히 관찰하고 통찰했던 산업혁명의 시대, 대영제국의 현미경처럼 위대한 예술.
    기고자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73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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