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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안고 있는 산 가운데 정답지 않은 산이 있겠습니까만, 광주(光州) 시민들에겐 무등산(無等山)이 그러한 산입니다. 1187m 높이의 당당하면서도 온화한 산, 그래서 아버지처럼 지엄하면서도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풍모를 함께 지닌 산, 그것은 이미 산이 아니라 거룩한 제단입니다. 이름조차 등위(等位)를 가리지 않는 무등이라 여유롭습니다. 광주 시내 어디에서나 우러러 보여 시민과 일상을 함께하며, 객지로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올 때면 맨 먼저 맞아주는 것이 무등산입니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각료,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평가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원래 원고에 없었으나 윤 대통령이 추가해 넣은 것으로 알려졌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대목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1963년 6월 베를린 연설을 모티브로 삼았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1961년 동·서베를린 사이에 장벽이 설치되고 칠흑 같은 냉전의 어둠이 계속될 때, 서베를린 시민들이 동독 땅 가운데 섬처럼 고립된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 가고 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홀연히 희망의 빛으로 서베를린을 찾아 시청 앞 광장에서 연설을 합니다. 5분 남짓의 참으로 짧은 연설이지만, 서베를린 시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한편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서방세계에 민주주의 승리를 확신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명연설이었습니다.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 그 유명한 "자유는 나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노예 상태에 있으면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고, 여러분이 사는 이 도시가 그리고 이 나라가 하나가 되고, 또한 위대한 대륙 유럽이 평화와 희망의 세상이 되는 그러한 날은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베를린 시민 여러분은 20여 년간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에 있었던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살건 모든 자유인은 베를린 시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자신도 자유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연설의 첫 부분은 "2000년 전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한 말은 '나는 로마시민이다'입니다. 지금 자유 세계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말은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입니다"로 시작하였습니다.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서로 연결되는 연설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와 전체 각료가 이례적으로 함께 참석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광주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며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자 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그동안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한 논란을 상당 부분 정리한 셈입니다.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며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었습니다.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실린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로 시작하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무력으로 진압되어 일단 평온을 되찾았으나 상처는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쓰인 시입니다. 이 시에서 광주와 무등산이 짝을 이루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처럼 무등산은 광주와 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기념사에 무등산이 함께 언급되었더라면 광주 시민의 정서적 유대감을 더 고양시켰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이번 기념식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특정 지역이나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민을 통합시키는 계기로 만들고, 광주가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기고자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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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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