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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민주주의의 敵(적),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발행일 : 2022.05.27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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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하 박지현)이 팬덤 정치 비판의 최전선에 나섰다.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팬덤 정치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심판받았다'는 그의 진단은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박지현은 비난의 십자포화에 포위돼 일방적으로 난타당하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엔 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지성주의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의 몰락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를 외치는 대중의 맹종(盲從)에서 비롯되었다. 문빠들의 절대적 옹위 속에서 '우리 이니'가 하고 싶은 대로 했기에 민생은 파탄 나고 나라는 벼랑 끝에 섰다.

    본격적 팬덤 정치는 노무현 전(前) 대통령 때 시작되었으며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노사모와 박사모의 출현이다. 대중 정치인에겐 열광적 지지자들보다 든든한 자산도 드물다. 시민사회의 자발적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강성 정치 팬덤은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키워 민주주의를 좀먹기 시작한다. 문빠나 박빠처럼 과격한 팬덤은 파멸의 씨앗이 된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 '재명 아빠'를 지킨다며 '개딸·양아들·개삼촌'을 자처하는 건 팬덤 정치가 정치적 부족주의로 타락하는 위태로운 징후이다.

    팬덤 정치의 어원(語源)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유가 숨어 있다. 특정 대상에게 열광하는 팬덤(fandom)에서 영지(領地)를 의미하는 접미사 '덤'(-dom) 앞의 '팬'(fan)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에서 왔다. 방탄소년단 아미(ARMY) 같은 연예인 팬덤이 무해(無害)한 데 비해 현실 정치인을 선과 정의의 화신으로 추앙하는 정치 팬덤은 광신(狂信)과 직결된다. 선악 이분법의 진영 논리로 무장해 정치를 정의와 불의가 대결하는 전쟁 정치로 몰아가 공동체를 황폐화하기 때문이다. 폭력적 반지성주의를 부추기는 팬덤 정치는 파시즘으로 가는 초대장이다. 그게 바로 문 정권 내내 진영 간 증오와 적대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초상이었다.

    정치적 우상 숭배(idolatry)는 팬덤 정치의 자양분이다. '아이돌'(idol·우상)은 원래 연예인을 지칭하는데, 정치가 연예화하면서 정치인도 덩달아 우상이 된다. 정치가 신앙 고백으로 변질되고, 우상이 된 정치인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검증도 불경(不敬)이나 신성모독으로 비난받게 된다. 조국 일가의 온갖 불법과 거짓이 대법원 최종심에서 증명되었어도 추종자들이 조국 전 장관을 박해받은 의인(義人)으로 그리는 게 생생한 증거다.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고통의 나락에 빠트린 문재인 정권을 체험했으면서도 문빠들의 익애(溺愛)는 요지부동이다. 논리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반지성주의 정치가 보여주는 막장의 풍경이다.

    팬덤 정치 최악의 폐해는 사실과 진실을 초토화한 데 있다. '대안적 사실'(실제로는 거짓)의 성채 위에 쌓은 자신들만의 허위의 왕국에서 보편적 지성과 합리성은 증오 대상으로 전락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자신들의 편향된 입장에 맞게 처리하는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가 극성을 부리면서 '집단 극단화' 현상이 심화된다. 극단으로 치닫는 팬덤의 맹신 앞에 과학적 사실과 진실은 무의미하게 된다. 21세기에 중세 암흑기가 재현되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은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 진영 논리가 폭민정(mobocracy)으로 질주한 암흑의 시대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된 지식인들이 궤변과 요설(妖說)로 팬덤 정치에 앞장서며 사실과 진실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권력이 던져준 떡고물에 취한 어용 지식인들은 지식인의 최후 거소(居所)인 언어의 진실성과 공공성을 해체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지식인의 존재 근거인 비판적 지성주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숙제가 되었다.

    청년 정치인 박지현은 조국·정경심 교수의 대(對)국민 사과를 촉구해 민주당 팬덤의 총공격을 받았다. 공정과 상식이 웃음거리가 된 치욕의 순간이었다. 이제 박지현은 자신을 발탁한 이재명의 반동적 정치 팬덤과 싸워야 한다.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는 민주공화국의 적이기 때문이다. 지성의 원천인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 없이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 정치 팬덤의 우상은 어두운 시대의 급소다. 그 우상을 망치로 부수는 자(者)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다.
    기고자 :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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