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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월급 깎으려면 일 줄이거나 직무 바꿔줘야"

    이정구 기자

    발행일 : 2022.05.27 / 종합 A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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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피크제 판결 의미

    대법원이 26일 내놓은 'B 연구기관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의 핵심은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선 안 되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인건비 줄이기용' 임금피크제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그 '합리적 이유'에 해당하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날 크게 네 기준을 내놨는데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실질적 임금 삭감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과 업무 강도의 감소가 있었는지 여부 ▲감액된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늘 판결은 임금피크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업장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정당성은 사건별로 판단해야 하고 하급심이 따져봐야 할 요소를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판결은 연구기관 근로자의 소송이었지만 고령자고용법의 적용을 받는 다른 직종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정년 연장이나 근무시간 축소 등 근무환경 변화 없이 단순히 만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한 B 연구기관의 임금피크제 내용이 고령자고용법에 위배되는지였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1,2심에 이어 이를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고령자고용법의 해당 조항은 강행 규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고, 설령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은 무효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직원에 비해 떨어지는데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만 감액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임금피크제는 통상 ▲정년 연장형(정년 연장하되 연장 기간 급여를 감액) ▲근로시간 단축형(근로시간과 급여를 함께 감축) ▲재고용형(정년 퇴직자 재고용 후 임금 조정) 또는 혼합형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런데 B 연구기관은 정년은 종전대로 하면서 월급만 깎은 방식이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차별"이라고 밝혔다.

    임금피크제가 법원에서 무효 판단을 받을 경우, 부당이득 반환 소송 등을 통해 깎인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기 때문에 이 기간이 지난 임금은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 측에 재협상 의무는 없지만 소송을 피하기 위해 노사협상을 다시 해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새로운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다.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을 논의해 임금피크제를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향후 소송과 노사 재협상도 ▲업무 동일성 ▲정년 연장 등을 통한 보상 제공 등 이날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조인들은 "이번 대법 판결에 비춰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치를 병행한 기업의 임금피크제는 현행법 위반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되 근로시간을 줄였거나 정년을 연장했다면 유효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B 연구기관처럼 동일한 업무를 맡기면서 정년 연장 등 보상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지난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全) 직원 정년을 60세로 올리는 대신 2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애초 정년이 60세였던 2급 이상 근로자들이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작년 11월 서울고법은 건보공단 손을 들어줬다.

    한편, 고용부는 이날 대법원 판결이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본 것이 아니라, 이례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일 뿐"이라며 "대부분의 기업들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기고자 :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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