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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視角] 5·18때 숨진 경찰도 희생자

    박정훈 사회부 기자

    발행일 : 2022.05.25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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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영(53)씨는 42년 전인 1980년 5월 21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은 석가탄신일이었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그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어머니가 실신한 상태로 동네 어른들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셨다. 놀란 정씨는 집 안에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만 했다. 이유를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 죽음의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된 것은 6년쯤 지난 고등학생 때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에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경찰 동료분이 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만큼 컸으니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씨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1980년 5월 20일, 광주에서 어떤 큰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거기에 휩쓸리셨을 것이라 대략 짐작만 했다. 하지만 이날 아버지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에게 큰 상처가 됐다.

    정씨의 아버지인 정충길 함평경찰서 경사는 그날 밤 시위대가 전남도청에 진입하는 걸 막는 데 투입된 경찰 수천 명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대원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에게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 모는 고속버스 한 대가 들이닥쳤다. 이 버스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 동료는 "아버지 얼굴이 찌그러지고, 오른편 복부 살점이 크게 떨어져 나갔다"며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해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만 받아왔다"고 했다. 비단 정씨만의 일이 아니다. 당시 그 일로 현장에서 이세홍 경장, 박기웅 경장, 강정웅 경장 등 함평서 소속 경찰관 3명이 더 숨졌다.

    이들의 유족들은 정씨처럼 자기 가족이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확하게 몰랐거나, 가족을 잃고도 내놓고 슬퍼하거나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경찰이었다고 하면 "죄 없는 이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손가락질이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치거나 숨진 이들뿐 아니라 이들도 또 다른 역사의 피해자였다.

    지난 19일 당시 버스 운전사였던 배모(77)씨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자신이 몬 버스에 치여 숨진 경찰관 유족들을 만났다. 지난해부터 민간인이 아닌 군과 경찰의 사망·상해에 대해서도 피해 조사를 시작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배씨는 유족들에게 처음으로 공개 사과했고, 유족들은 사과를 받아들였다. 유족들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했다. 이번 만남이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기고자 : 박정훈 사회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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