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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72)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발행일 : 2022.05.25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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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도다"라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봐야 믿는다. 아무리 오랜 믿음도 증거 앞에서는 흔들린다. 교회의 거듭된 설교에도 천동설을 의심케 하는 증거가 쌓여가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교회 옥상에서 별 보기를 좋아했던 신부 코페르니쿠스가 고민에 빠졌다. 모든 별이 계절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수성과 금성은 가끔 그 반대로 움직이는 사실은 천동설로 도저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로 돌아섰다. 하지만 교황청과 맞서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발표는 최대한 늦췄다. 임종하는 자리에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자기 책을 받아 쥐고 눈을 감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던 폴란드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다. 헝가리, 보헤미아, 프러시아, 리투아니아 등 다른 지역의 금화와 은화가 열일곱 가지나 돌아다녔다.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그런 판에 폴란드의 지그문트 1세가 1528년 새 돈을 발행했다. 그 지역에서는 은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그 은으로 만든 새 돈 이름은 '탈러'였다. 오늘날 '달러'의 기원이다.

    지그문트 1세가 자기 계획에 관해서 코페르니쿠스에게 의견을 물었다. 지동설에 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코페르니쿠스가 돈 문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새 돈을 만들려면 옛것은 폐기하십시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합니다." 영국인들은 그것을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한다. 헨리 매클라우드라는 영국 경제학자가 1858년 자기 책에서 토머스 그레셤의 말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그레셤보다 수십 년 빨랐다.

    별을 관측하던 코페르니쿠스는 돈에도 관심이 많았다. 통화량과 물가가 비례한다는, 화폐수량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의 하나가 코페르니쿠스다. 겁 많은 천문학자이자 과감한 화폐 이론가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어제 눈을 감았다.
    기고자 :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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