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태평로] 2년·4년짜리 직장 떠도는 젊은이들

    김덕한 기획부장

    발행일 : 2022.05.23 / 여론/독자 A35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한 중견 기업 임원 비서로 일하는 A씨는 새 직장을 찾고 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며 4년을 일했지만 더 이상 계약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법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게 두 번째, 나이는 서른을 넘겼다. 괜찮은 회사 비서 경력은 나쁘지 않지만 훨씬 젊고 활기찬 구직자들과 경쟁하자니 앞일이 막막하다. A씨는 "계약직으로라도 더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결국 직장에서 쫓겨나도록 하는 법이 어떻게 비정규직 보호법이냐"고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잊고 지내지만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들이 시행되고 있다. 1998년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파견 직원과 계약 직원을 1년씩 두 번, 2년 고용한 후엔 정식 채용하도록 한 법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도록 하려는 입법이었지만 현실에선 2년이 되면 일자리를 잃게 하는 법이 돼버렸다.

    이런 보호법이 조합되면서 우리 사회엔 새로운 채용 관행이 생겼다. 직원을 용역 회사에서 파견받아 최장 2년 쓴 후, 업무 능력이 괜찮으면 직접 계약해 1~2년을 더 쓰고, 결국 재계약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근로자는 보호하지 못하고 기업을 보호하고 있다. 기업들이 직원을 내보낼 때 갖게 되는 정서적·도덕적 부담까지 이 법이 무마해 준다. 숙달된 직원을 내보내는 손실이 있긴 해도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전례를 만들어 고용 부담을 지는 것보다 낫다.

    입법 당시부터 부작용은 예견됐지만 정치권은 '약자(비정규직)를 위한다'는 손쉬운 명분을 택했다. 비정규직 2년 제한이 시작된 2009년 7월, 실제 해고 대란이 일어났고, 비정규직들은 "법을 고쳐서라도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우성쳤다. 비정규직을 정말 보호하려면 철밥통 정규직의 기득권을 줄여야 했지만, 당시 민주당은 민노총 눈치만 보며 '법을 예정대로 시행해 정규직으로 돌리면 된다'고 우겼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엔 2년, 4년짜리 직장을 떠도는 A씨가 양산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되레 떨어졌으며, 대중의 관심은 무뎌져 그냥 일상이 돼 버렸다. 보호법의 기저엔 '정규직은 선(善), 비정규직은 악(惡)'이라는 2분법,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게 선(善)'이라고 우기는 위선과 무능, 무책임이 깔려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시의 입법을 반성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던 2014년 비정규직들이 등장하는 영화 '카트'를 관람한 후,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떤 개선책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더 심하게 역주행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로 달려간 그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고, 직접 채용해야 할 이유가 부족해 보이는 용역 회사 소속 직원들을 느닷없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했다. 보호법 입법 당시의 이분법과 위선은 더 심각해졌다. 2년, 4년짜리 직장을 떠도는 젊은이들의 미래 일자리까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방법으로 당겨 쓰는 몰염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 과제 중 밥그릇이 걸린 노동이 개혁 저항이 가장 심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부딪칠 분야다. 정규직 과보호, 비정규직과 벌어진 심각한 격차, 저효율 구조 등 개혁 과제 역시 전 국민이 알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위선과 무책임의 악습을 깨는 용기와 지혜다.
    기고자 : 김덕한 기획부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5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