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아이가 행복입니다] 16년째 나눔대사… 배우 고두심 인터뷰

    김경은 기자

    발행일 : 2022.05.20 / 특집 A27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주는 기쁨,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지난 2일,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을 맞아 '20 22 어린이말씀' 선포식이 열린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배우 고두심(71)씨가 나타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1948년부터 전 세계 아동들이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원 사업을 전개해 왔다. 본지와는 아이의 첫돌이나 생일 등을 기념해 아이 이름으로 기부하면 평생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될 수 있는 기부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올해 데뷔 50주년인 고씨는 2006년 이 재단 나눔대사로 위촉됐다. 그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바쁜 일정을 쪼개 자신의 손발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16년째 틈틈이 기부와 봉사 활동, 어린이 구호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명칭도 행사 때 잠시 얼굴만 비추는 역할은 싫다며 처음 제안받은 '홍보대사' 대신 '나눔대사'로 바꿔달라고 먼저 요청한 것이다.

    이날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4대(代)가 한집에서 살아 어릴 때부터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저 혼자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은연중에 여기게 됐다"며 "천혜의 자연환경도 굶어서 당장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이에겐 아무 소용 없기에 나눔은 절박한 것이란 걸 나는 어린 시절부터 뼛속 깊이 새겼다"고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제주는 척박한 땅이었다. 논은커녕 그나마 있는 밭은 온통 자갈이어서 종일 갈아도 먹을 수 있는 건 콩, 보리, 조와 메밀 조금이었다. "위로 오빠가 셋 있었어요. 그 시절엔 밥도 양푼에 한꺼번에 떠서 머릿수대로 숟가락만 딱딱 꽂아 놓으면 알아서 입에 넣어야 했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내 몫은 삼킬 수도 없었죠. 근데 담 너머로 누가 지나가잖아요? 그러면 '삼촌, 잡솨' 하면서 숟가락 하나 더 쥐여주고 그 밥을 나누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모자랐겠어요? 보리밥은 배도 빨리 꺼지는데, 하하!"

    제주여고 재학 때였다. 조례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성적 우등생을 단상으로 불러 장학금을 주는 모습에 약이 바짝 올랐다. "제가 공부는 좀 안 했어요(웃음). 근데 똑같이 공부했는데 누구는 잘한다고 돈도 받고, 저는 아무것도 없으니 분했죠." 그 자리에서 마음먹었다. "좋다. 내가 공부로 장학금을 타진 못했지만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주는 사람이라도 되자."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1972년 MBC 5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배우로 데뷔했다. 1986년 미원 광고를 찍고 목돈 1억원을 만들어 모교에 가져가니 고교 시절 그에게 기하를 가르친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돼 있었다. "'내 제자가 장학금 1억을 들고 왔다'며 그분이 흥분해 제게 밥을 사겠다고 차를 빼다가 박아서 찌그러지기까지 했죠(웃음)."

    그 뒤 제주에선 학교마다 졸업생들이 고씨에 이어 장학금을 쾌척하는 기부 릴레이가 펼쳐졌다. 그도 제주에서 돈을 벌게 되면 금액과 상관없이 도로 전부 기부했다. "고두심 이름 걸고 피땀 흘려가며 하는 연기만 저의 본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아깝다고 여긴 적도 없죠."

    1976년 드라마 '정화'에서 김만덕(조선 후기 제주의 자선사업가) 역할을 했다. 제주에선 무섭거나 어려운 순간에 부딪히면 '만덕 할망이 도와준다. 걱정 말라'가 엄마들 입에서 전설처럼 흘러나왔다. 그는 그걸 쭉 들으면서 자란 제주의 핏줄이다. "기부나 봉사를 하고 나면 내면에 차오르는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주변에 함부로 '당신도 해보라'고는 절대 안 해요. 주는 기쁨은 해본 사람만이 알고, 사실 기부와 봉사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공부를 위한 거니까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직원들과 아프리카로 봉사하러 갔을 때 소나무 등걸처럼 쩍쩍 갈라져 있던 아이들 팔다리를 그는 잊지 못한다. "식량을 끓여서 주면 배를 채우기엔 한없이 모자라는데도 아이들은 해맑게 웃어요. 기생충에 감염돼 발끝이 썩어가는데도 연필 한 자루면 까르르거리며 좋아했죠. 그 모습을 보고 나면 정신이 바짝 들어서 새 옷 사려다가도 절제하게 돼요."

    어느덧 손주 넷을 둔 할머니가 된 고씨는 "살아보니 인(人)꽃이 제일 예쁘더라"며 "이름과 얼굴이 조금 알려져서 시간을 나누는 것뿐, 내가 나서서 하는 일은 별로 없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손사래를 쳤다.
    기고자 : 김경은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12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