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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겪은 우리, 우크라 전쟁 남의 일 아냐… 구호품 10만개 보내 현실적 도움 줄 것"

    신은진 기자

    발행일 : 2022.05.18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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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학 영안모자 명예회장

    "우크라이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72년 전 우리가 겪은 일입니다."

    백성학(82·사진) 영안모자 명예회장은 지난 4일 경기도 부천시 영안모자 본사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휴전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런 일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백 명예회장은 본지를 통해 어린 딸의 등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둔 우크라이나 사진 작가의 사연을 접하고 분유·이유식·고기 등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구호 물품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백방으로 찾았고, 장대높이뛰기의 살아있는 전설인 세르게이 붑카 우크라이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과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백 명예회장은 "독일 계열사를 통해 10만개의 구호품을 구입해 다음 달 보내고, 전달 상황을 봐가며 앞으로 계속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 명예회장은 이와 함께 전 세계 주요 지도자들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제발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돈만 몇 푼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런 편지가 직접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야기가 적어도 지도자 한 명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결코 헛된 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백 명예회장이 겪은 전쟁 이야기를 소개한 외신 기사도 함께 들어있다. 백 명예회장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원산 갈마항에서 남한으로 피란 가는 교회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다 얼떨결에 피란선에 몸을 싣게 됐고, 졸지에 전쟁 고아가 됐다. 당시 그의 나이 10세. 미군 부대 심부름꾼 생활을 했던 그는 17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미군 야전병원에 19개월 입원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전쟁이 끝난 뒤 1959년 청계천 4가에 노점 모자 가게를 차렸다. 이렇게 시작한 영안모자는 직원 수 9000여 명, 매출 2조원의 회사로 발전했다.

    63년 동안 영안모자를 이끌었던 그는 지난 5일 장남 백정수 부회장에게 영안모자 회장직을 물려줬다. 경영 최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백 명예회장은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뿐 아니라 대형 역사 박물관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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