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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동훈 청문회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윤희숙 前 국회의원

    발행일 : 2022.05.14 / 여론/독자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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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곪아가는 상처를 건드리는 논쟁은 아프지만 건설적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스펙 쌓기 논쟁이 그렇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과 비슷한지만 따지는 진영 싸움으로, 결국에는 개그 프로로 회자됐을 뿐이다.

    코미디 정쟁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들이 묻혀 버렸다. '고비용 스펙 쌓기가 문제없다고 보냐?'는 질문도 그렇다. 후보자는 '반칙이나 위법은 아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기에 봉사하며 살라고 강조한다'고 답변했다.

    후보자의 답변은 흠잡을 데 없는 모범 답안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논쟁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보여줬다. '그들만의 리그'를 공격하는 쪽이나, 후보자 자격과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방어하는 쪽 모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를 어떻게 확장할 것이냐'에 대해선 입을 꾹 닫았기 때문이다. 애초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나 민주당은 흠집 내기에 스펙 쌓기를 써먹었을 뿐 미래 지향적인 어떤 관점도 제시하지 않았고, 심지어 국민의힘은 '빈부 격차와 부모 재력에 따른 교육 격차가 엄연히 존재한다'며 그게 어쨌다는 거냐는 식의 발언까지 내놓았다.

    진보와 보수, 즉 결과의 평등을 외치는 쪽과 기회가 균등하면 괜찮다는 쪽 모두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아이에게 '없는 집에 태어났으면 꿈도 꾸지 마라' 윽박지르고 있다. 공정이란 가치에 한 톨도 진정성이 없으며, 갈등 원인을 없애기보다 갈등을 지피는 데만 몰두한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솔직히 말해, 재력 있는 부모가 자녀의 가능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불법 편법이 아닌 한 비난할 수 없다. 또한 나라 재정 역시 한계가 있고 쓸 곳이 너무 많기 때문에, 부자 부모가 해주는 모든 것을 모든 아이에게 제공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꿈이든, 그 꿈을 향한 길이 부모 재력에 따라 완벽하게 단절된다면 절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바로 그런 박탈감이 금융 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수 선진국의 정치를 분노와 포퓰리즘의 정치로 망가뜨려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훈 청문회 논쟁은 우리 미래를 위해 작지만 중요한 공을 쏘아 올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만의 리그'로 통하는 진입로를 활짝 열어야 한다. 열악한 환경이라도 열정과 가능성만 있다면 그 아이들 앞에 튼실한 계단이 놓이도록 국정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 민족사관학교 같은 기관을 대거 세우고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입학 기회를 넓게 연다면 어떨까? 대기업에서 사원 대상으로 운영하는 일류 어린이집을 소외된 지역과 가정을 대상으로 부지런히 짓는 것은 어떤가? 해외 유학 장학금을 대폭 확대해 열심히 하고 잘하기만 한다면 가난해도 어디까지든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자.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사회 공헌 아이템을 찾아 헤매는 기업들이 여기에 재원을 쏟아 넣도록 정부가 '가치 높음' 신호를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어둠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일 끔찍한 일은 갖고 있는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이다.' 부모가 돈이 없다고 꿈꾸는 것도 금지된 사회에 미래는 없다. 청문회 때문에 부유층 스펙 쌓기에 쏠린 사회적 관심은 공동체의 위기를 미래를 밝히는 변혁으로 만들 기회다. 특정인을 낙마시키네 마네 영혼을 갈아 넣느라 이 큰 기회를 보지 못하는 보수와 진보는 '가짜 보수, 가짜 진보'일 뿐 정치 세력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기고자 : 윤희숙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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