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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언제까지 '문송(문과라서 죄송)'하게 할 건가

    조형래 산업부장

    발행일 : 2022.05.14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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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SK하이닉스 같은 IT 대기업에서 신입 동기가 한자리에 모이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한다. 문과 출신들이 전국 각지 대학에서 온 이공계 출신 동기들을 보면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들만 죽어라 고생해 입사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신입 직원 중 이공계 비중이 8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은 데다, 이공계 출신들은 전공 점수 외에는 별다른 스펙도 없고 필기시험 커트라인 점수도 훨씬 낮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직군은 아예 필기시험을 면제하는 곳도 많다. 간혹 술자리에서 눈치 없는 이과 동기는 "그 정도 스펙이면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에 가지 왜 우리 회사에 왔냐"고 결정타를 날린다고 한다.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 민족)'로 불리는 플랫폼 기업이나 잘나가는 스타트업에서는 이공계가 아니면 아예 입사 서류도 내기 힘들다. 설령 문송이가 천운을 타고 입사를 해도 이공계 개발자와 문송이 비(非)개발자 사이에는 넘어서지 못하는 장벽이 생긴다. 이들 회사에서는 개발자는 '핵심 인재', 비개발자는 '그냥 직원'으로 분류된다. 입사한 지 1년만 지나도 성과가 뛰어난 핵심 인재와 '그냥 직원' 사이에 연봉 격차가 수천만원씩 벌어진다. 플랫폼 기업의 한 임원은 "플랫폼 기업 창업자들은 대개 개발자 출신으로, 개발 인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개발 부서에서 보고를 하면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도 스태프 부서에서 노사 문제나 정부 규제 등에 대해 보고를 하면 '그런 거로 내 시간을 뺏느냐'는 듯 표정이 확 바뀐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산업계를 휩쓸었던 임금 인상 러시도 개발자 인력난이 촉발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네카라쿠배' 플랫폼 기업에서 핵심 인력을 붙잡기 위해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단행하자 삼성전자·하이닉스가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임금을 올렸고, 그 여파는 다른 대기업에도 줄줄이 미쳤다. 작년 100대 대기업들의 임금 총액은 무려 15.2%나 증가했고, 과도한 인건비 인상은 40년 만에 돌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기업 실적이 줄줄이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산업계 전반에서 이공계 인력난은 앞으로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에서 자동차·유통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체가 테크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데다 4차산업 시대가 열리면서 전기차 배터리·인공지능·로봇·자율주행차 등 신사업 분야에서도 인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금 배터리 기업에서는 "공대생이면 무조건 뽑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개발자 인력난이 빚어지는 데에는 대학 정원 규제가 핵심 배경이다. 사실 정원 규제는 해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낡은 규제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의 경우 학부제 개편 당시인 1992년 신입 정원이 215명에서 작년 16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요즘 인력 수요가 가장 많은 컴퓨터공학부도 1990년대 컴퓨터공학과 시절 90명이었던 정원이 8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다른 수도권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원 규제 탓에 작년 수능 응시자 숫자가 약 42만명으로 20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도 수험생들이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기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또 매년 35만명씩 배출되는 4년제 대학 졸업생 가운데 문과생의 비중이 이공계 비중보다 더 높은 상황에서, 극심한 채용 미스매치가 빚어지고 있다. 죽어라고 공부해도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고 명문 대학을 졸업해도 전공이 안 맞아서 취업이 힘들다면 그 좌절감은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젊은 세대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당장 정원 규제 완화가 힘들다면 문과생들을 위한 교과과정이라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삼성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시작한, 청년을 위한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 '삼성 청년 SW아카데미'가 올해로 5년째를 맞고, KT·하이닉스·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기고자 : 조형래 산업부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99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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