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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비디오 드링킹, 또는 랜선 음주회

    한은형 소설가

    발행일 : 2022.05.12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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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 드링킹'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은 건 4년 전이었다. Q로부터였다. "그게 뭔데?"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거래."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런 걸 하자고 한다고 했다. 쑥스럽게 그게 뭐냐며, 둘이서 그게 뭐냐며 Q는 난처해했다. 하지만 좋다고 했다 한다. 그렇게라도 본인을 보고 싶어 하는 친구의 마음을 아니까. Q는 꼭 그런 걸 해야 하느냐고 했다. 컴퓨터를 보면서-술을 마시면서-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고 말이다. 또 친구와 자기는 둘 다 '샤이'해서 눈도 잘 못 마주칠 거라고.

    실제로 그런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대화는 유머와 선문답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사회적 관습과 관계없이 단어를 자의적으로 조합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 그들의 '비디오 드링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쪽의 시간과 이쪽의 시간을 고려해 날짜를 잡아보자고 했지만 말이다. 다른 타임라인 속에서 살고 있는 둘의 시간은 조율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면 10년 넘게 알고 지내지만 남다른 '샤이함'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라 그랬나도 싶고.

    비디오 드링킹을 실천해 본 것은 나였다. 이제는 낡은 느낌이 드는 '비디오'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비디오'를 보지 않는 시대, DVD를 보기도 하지만 OTT로 영화를 보는 시대에 '비디오'라는 단어가 주는 애틋한 정서가 있었다. 비디오 드링킹이라는 게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자 호응하는 분들이 계셨다. 이런 것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서 만났다. 각자의 술을 가지고 컴퓨터에서.

    장점이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입었던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으면 된다. 원하는 술도 마실 수 있다. 원하는 안주도 먹을 수 있다. 원하는 술잔과 원하는 그릇에. 어떤 술을 마실까, 어떤 안주를 먹을까 상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 술집이 시끄러울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술집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약속 장소로 가지 않으니 시간도 절약된다.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으니 편하다.

    단점도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 입었던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으면 된다는 것. 원하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원하는 안주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술을 마실까, 어떤 안주를 먹을까 상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 술집이 시끄러울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술집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고 노트북 앞에서 마시는 술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재미가 덜했다. 냄새와 소음과 걱정과 설렘과 불편과, 그로 인한 이야기들이 없었다.

    장점이 곧 단점이었다. 번거롭지 않고 편하다며 비디오 드링킹을 했지만 곧 그리워졌다. 비디오 드링킹이 아닌 오프라인 드링킹이. 술집에 오고 가는 동안이 없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어떤 술을 마실지, 어떤 술집에 갈지 정하는 일도. '여정'이라고 부르는 여행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여행을 여행답게 해주듯 술을 마시는 일에도 '여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의 시대가 지속되면서 비디오 드링킹의 의미는 달라졌다. 놀이가 아니게 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달까. 비디오 드링킹이 있어서 '2인 이상 집합 금지'였던 시절에도 셋이 술을 마실 수 있었지만 말이다. 남들은 이런 걸 '온라인 드링킹'이거나 '랜선 음주회' 아니면 '페이스타임 드링킹', '줌(zoom) 드링킹' 같은 식으로 불렀다.

    나는 오프라인 드링킹을 기대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물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주에 갔다가 구했다. 신라인들이 술을 마실 때 굴려서 놀기 위해 만든 주사위. 이름은 주령구다. 14면체로 되어 있는데, 정사각형이 6면, 육각형이 8면이다. 소설가 강석경이 경주를 주제로 쓴 책 '이 고도(古都)를 사랑한다'에서 보고 꼭 갖고 싶었다. "주령구를 굴려서 위에 나타나는 글씨에 따라 행동을 하는 놀이로 시 한 수 읊기, 소리 없이 춤추기, (…) 팔뚝을 구부린 채 술 다 마시기, 얼굴을 간질여도 꼼짝 않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14개의 지령 중에 가장 따르고 싶은 것은 '술잔을 비우고 크게 웃기'다. 음진대소(飮盡大笑).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여러 사람 코 때리기'. 여러 사람을 만나서 술을 마시고 싶다. 소박한 듯 소박하지 않은 바람이다.
    기고자 : 한은형 소설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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