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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새벽길

    김성신 출판평론가

    발행일 : 2022.05.12 / 특집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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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와 함께 걷는 고요한 숲속길… 침묵 속 참고 견디는 법 배웠어요

    "나는 이 시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아. 늘 깊은 잠에 빠져 있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난 깨어 있어."

    모두가 잠든 캄캄한 새벽이에요. 아빠는 아이를 깨워 따뜻한 옷을 건네주어요. 그러고는 함께 집을 나서죠. 아이도 조용히 아빠 뒤를 따라가요.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무엇 때문에 걷는지 아이는 알 수 없어요.

    이 책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걷는 고요한 새벽길 풍경을 보여줍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아요. 그저 앞장서서 숲속으로 걸어가며, 아이에게 온전한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할 뿐이죠.

    아이는 처음엔 손전등을 켜고 쫓아 걸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잘 보이지 않네요. 아이는 손전등을 끄고 아빠 발소리를 따라 조심조심 숲길을 걷기로 해요. 그러자 걷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른 새벽인데도 숲속 동물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했어요. 마침내 아빠가 걸음을 멈췄어요. 그러곤 땅에 앉네요. 아이도 옆에 앉아요. 땅의 습기 속에서 나뭇잎 냄새도 고스란히 맡을 수 있네요. 아빠와 아이는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새벽의 숲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빛이 바뀌는 걸 알아채지 못했지. 검은색은 어느 결엔가 회색이 되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됐어. 그리고 노란색도 조금 있는 것 같아. 밝아지고, 푸르러지고, 따뜻해졌어."

    먼동이 터오며 빛은 점점 바뀌고 어느새 숲은 풀벌레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로 가득 찼어요. 아이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껴요.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소리와 냄새와 촉감으로도 숲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깨달아요. 아빠가 빙그레 웃네요. 그러곤 왔던 길을 되돌아가요.

    아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오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는 아빠가 침묵으로 건넨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였어요. 아이 역시 말없이, 묵묵하게 말이에요.

    말로써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 말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요. 가령 '사랑'이 그렇죠. 사랑하는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가장 좋을까요? 사랑에 관한 노래가 세상에 너무도 많은데 새로운 사랑 노래는 끝도 없이 계속 나오고 있죠. 지구에 살았던 모든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사랑을 노래했어도, 아직 사랑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찾지 못했나 보네요.

    아빠와 함께한 새벽 숲 산책길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고독이 선사하는 생각의 깊이, 참고 견디는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을 마음으로 존중하는 법까지 말이에요.
    기고자 : 김성신 출판평론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28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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