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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정조의 비밀편지

    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22.05.12 / 특집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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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파에게 속마음 전해 '막후 정치'에 활용했어요

    조선 22대 정조(재위 1776~1800) 임금이 쓴 '정조 어필(御筆·임금이 쓴 글씨) 한글 편지첩'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 됐어요. 원손(아직 세손이 되지 않은 왕세자 맏아들) 시절부터 세손(왕세자의 아들 중 왕위 계승자로 지정된 인물) 시절, 왕위에 오른 뒤까지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 14통입니다.

    정조는 평생 여러 사람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는데요. 이번에 지정 예고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정조의 편지가 있어요. 13년 전 공개된 한문 편지인 '비밀 어찰(御札·임금의 편지)' 290여 통입니다.

    정조의 정치적 반대파는 노론 벽파?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할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는 참변을 겪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이 당파 싸움인 당쟁 때문이었다고 보고, 당쟁을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권 강화와 체제 재정비를 위해 영조 이래의 '탕평책'(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 세력 사이 균형을 꾀한 정책)을 계승했다고 해요.

    하지만 당파 중에서 강한 세력이었던 노론의 대부분이 '벽파'를 형성해 정조의 반대 세력이 됐고, 정조의 정치 노선에 찬성하던 세력이 '시파'가 돼 당쟁은 벽파와 시파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합니다.

    이 노론 벽파의 대표적 인물이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낸 심환지(1730~1802)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 노론 세력의 독살이라고 주장하며, 심환지를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박종원 감독의 1995년 영화 '영원한 제국'에선 정조(안성기)에게 맞선 악역으로 설정된 인물이 심환지(최종원)였죠. 이것이 정조의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 일반적 해석이었습니다.

    측근까지 속아 넘어간 막후 정치

    그런데 2009년 2월에 정조의 편지들이 새롭게 공개되면서 정조 때 정치에 대한 종전 해석은 크게 수정해야 했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대학원이 공개한, 290여 통의 이 어찰은 정조가 한 신하에게 보낸 비밀 편지였습니다. 그 신하란 바로 심환지였습니다.

    우의정에 임명된 심환지가 거듭 "사직을 받아주십시오"라는 상소를 올리자 1798년 10월 17일 정조는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밤에 잘 있었는가? 이제 곧 왕명을 내릴 텐데, 이번에는 며칠 내로 다시 상소해야 한다. 이 말을 전하려고 관리가 도착하기 전에 심부름꾼을 보낸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임금이 관리를 보내 "벼슬을 하러 나오라"는 '공식적 왕명'을 전하고, 비밀리에 심부름꾼을 보내 "사직 상소를 올리라"는 '진짜 왕명'을 알린 것이죠. 덥석 벼슬을 받기 어려운 심환지의 정치적 처지를 고려해, 미리 행동을 정해 놓고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97년 10월 6일 편지에선 이런 조정 정치의 '기획' 측면이 더 드러납니다. "내일 그대가 정리곡(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만든 제도)을 통해 지방관이 오히려 백성을 수탈하는 폐단을 제기하라"고 지시합니다. 정조의 각본대로 심환지가 왕 앞에서 이 말을 올리자, 정조는 칭찬하며 표범 가죽을 선물로 내립니다. 미리 대사를 정해 놓은 정치적 연극이었던 셈입니다.

    같은 해 2월 편지에서는 좀 더 충격적인 실상이 드러납니다. 정조 초기의 권신(권세 있는 신하)이었던 홍국영(1748~1781)을 실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김종수란 신하가 올린 상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상소를 정조가 직접 써서 김종수에게 줬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렇게 은밀하게 상황을 꾸미는 정치를 '막후 정치' '공작 정치'라 합니다. 이런 정조의 막후 정치에 측근까지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 드러나

    비밀 편지에는 평소 근엄한 군주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표현들이 나옵니다. "요새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오경(새벽 3~5시)이 지났다" "이 자는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호로자식[胡種子]'이라는 욕설도 등장합니다.

    속담과 구어체 같은 활달한 표현도 수시로 보입니다. '개에게 물린 꿩 신세' '입에 맞는 떡' '그 사람이 어찌 한 숟가락에 배부르고 한 숟가락에 굶주리는 사람이겠는가?'라는 문장이 나오는가 하면, '뒤죽박죽'이라는 우리말 표현은 도저히 한자로 쓸 수 없었는지 한글로 썼습니다. '가가(呵呵)'라는 표현도 곧잘 나오는데요. 이것은 웃음소리를 표현하는 말로 요즘 'ㅋㅋ' 정도에 해당합니다.

    정조라는 한 군주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났다는 점에 흐뭇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주창했던 임금이 바로 정조라는 점에서 당혹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문체반정이란 선비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문장을 쓰지 말고 격조 있는 옛 문장을 쓰라"고 강요했던 것인데요. 여기서 크게 혼난 사람이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조가 문체반정을 주창했던 것은 새로운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시파 세력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미리 시파를 꾸짖어 벽파의 공격을 차단하려고 했다는 것이죠.

    이 비밀 편지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심환지가 "다 읽고 없애 버리라"는 왕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측근이 아닌 다른 신하에게도 이런 편지를 보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판적인 눈으로 보자면 정조의 이런 행태가 두 얼굴을 지닌 위선적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겉으로는 적대적 관계였던 신하들까지도 '비판적 협력자'로 끌어안을 정도로 그릇이 큰 소통 정치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시파와 벽파]

    당쟁(黨爭)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진 조선 중·후기의 '붕당 정치'는 관료들이 파벌을 이뤄 정권을 다투던 일을 말합니다.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이 생겨난 뒤 서인은 다시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나뉘었습니다. 광해군 때 집권했던 북인은 인조반정 이후 세력이 약해졌고, 서인은 숙종 무렵 노론과 소론으로 갈렸습니다. 반대파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었기 때문에 당쟁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죠.

    정조 때는 크게 시파와 벽파의 대립이 두드러졌는데요. 시파는 정조의 뜻을 따르는 여당, 벽파는 정조에게 반대하는 야당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파에는 대체로 남인과 소론이 많이 가담했고 일부 노론 인사도 있었습니다. 벽파는 주로 노론 세력이었죠.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벽파 역시 정조의 완전한 반대파가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기고자 :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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