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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美대통령 취임사

    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발행일 : 2022.05.11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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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남북전쟁) 때는 화합, 냉전 시기엔 자유… 국제 정세 반영했죠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어요. 국가를 이끌어 갈 새 정부의 핵심 가치와 비전을 제시한 것이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사에서 미국의 통합과 국민 화합을 강조하며 "내 모든 영혼이 이 안에 들어 있다"고 했어요. 이는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에 서명할 때 한 말을 인용한 것인데요. 특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요. 명연설로 회자되는 미 대통령의 취임사와 그에 담긴 역사적 배경을 알아볼까요?

    링컨의 두 번째 취임사

    에이브러햄 링컨이 16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미국에는 전운이 감돌았어요. 당시 노예제 폐지를 두고 미국의 남부와 북부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의 7주(州)가 연방에서 연이어 탈퇴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연합국'을 수립한 거예요.

    이에 링컨은 1861년 3월 취임식에서 화합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어요.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전쟁을 피하고자 했던 거예요.

    하지만 기어코 남북전쟁(1861~1865)은 일어납니다. 전쟁 막바지인 1865년 링컨은 재선에 성공하고, 같은 해 3월 취임 연설을 하는데요. 이미 전쟁으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전장에서 수십만 명이 희생된 뒤였죠. 남북전쟁의 전세는 북부의 승리로 기울어져 있었어요. 이에 그의 지지자 중 일부는 "북부가 결국 남부를 무너뜨렸다"는 패기 넘치는 연설을 원하기도 했는데요.

    링컨은 취임사에 처벌과 복수의 내용보다 편을 가르지 않는 관용과 인류애를 담아냈어요.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의를 베풉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도록 온 힘을 다합시다. 전투에서 쓰러진 군인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노력합시다." 그의 두 번째 취임사는 2005년 워싱턴 포스트가 뽑은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로 뽑혔답니다.

    루스벨트의 대공황 속 취임사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3월에 제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어요. 당시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미국 내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은 상태였는데요.

    이에 그는 취임사에서 공포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명하고 용감하게 대처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겁먹지 말고 함께 맞서 일하며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자는 내용을 담아낸 거지요.

    이후 루스벨트는 경제 부흥 정책인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시민보존단'을 꾸려 환경보호 사업을 벌이고,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를 실시해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했어요. 국가가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뉴딜 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뉴 프런티어 앞세운 케네디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케네디는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내세웠는데요.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불굴의 정신'을 의미해요. 그는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을 이기고 선거로 뽑힌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됐어요.

    케네디는 1961년 취임식에서 유명한 연설을 남겼는데요. "세계의 긴 역사에서 극도의 위험에 처한 자유를 수호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세대는 몇 세대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 국민 여러분,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주십시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산주의 국가들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대립하는 냉전(1947~1991) 중이었어요. 미국은 공산주의 세계의 팽창을 경계하고 있었죠. 케네디는 "미국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부담이든 기꺼이 질 것이며 국민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취임사에 담아낸 것이죠.

    불황기 극복한 레이건

    영화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이 1981년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미국은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어요. 1970년대 두 번의 석유 파동(오일 쇼크)으로 물가가 폭등해 경기는 침체된 상황이었죠. 석유 파동은 공급 감소로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 정치·경제가 대혼란에 빠지는 사태를 말해요.

    국제 정세도 혼란스러웠어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친서방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몰락하고 이란이 반미 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란 혁명의 시위대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령해 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결국 미국은 이란에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하고,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 날인 1981년 1월에야 444일간 억류돼 있던 인질 전원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죠.

    이날 레이건은 취임 연설에서 우방국에 대한 신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범위를 제한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 그 자체"라며 "(정부가) 우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고, 우리 등에 올라타지 않고 우리 곁에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하죠.

    이를 위해 그는 '작은 정부'의 역할을 주장하며 연방 정부의 규모를 축소해 공공 지출을 줄이겠다고 합니다. 이후 레이건은 조세를 삭감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실시했고, 그의 임기 말 미국은 불황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레이건의 연설문은 오늘날에도 더 나은 미국을 위해 나아갈 방향을 잘 제시한 명문으로 꼽히고 있답니다.

    [역대 미국 최악의 취임사는?]

    미국의 15대 대통령인 제임스 뷰캐넌의 1857년 3월 취임사는 역대 최악의 취임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노예제를 두고 남부와 북부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는 "사람들이 노예제에 너무 몰두해 더 중요한 문제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노예제 이외에 다른 문제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어요. 당시 미국 내 최대 현안이던 노예제 문제를 사실상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죠. 그리고 4년 뒤에는 바로 이 노예제 때문에 남북전쟁이 일어났죠.

    기고자 : 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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