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一事一言] 오렌지는 오렌지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발행일 : 2022.05.11 / 문화 A22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윤여정 영어에 감탄했다. 지난 몇 달간 윤여정은 드라마 '파친코' 홍보를 위해 미국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랬지만 윤여정은 정말 영어를 재치 있게 할 줄 안다. 특히 나는 그가 '켈리 클락슨 쇼'에 출연해 영어로 농담을 따 먹는 영상을 유튜브로 보며 박수를 쳤다.

    진행자가 물었다. "점쟁이가 96살에 짝을 만날 거라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윤여정은 답했다. "96살에 짝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치매에 걸리거나 노망이 날 수도 있는데." 진행자는 뒤로 넘어갔다. 관객들도 넘어갔다. 진행자는 또 물었다. "도박을 해보신 적 있나요?" 윤여정은 답했다. "라스베이거스에 갔는데 친구가 슬롯머신을 당겨보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수많은 사람이 당겼을 텐데 이건 너무 비위생적이야." 진행자는 빵 터졌다. 관객도 터졌다. 나도 터졌다.

    동영상 아래 댓글을 보다 기분이 좀 상했다. 몇몇 한국인이 윤여정의 완벽하지 않은 문법과 발음을 지적질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꼬장이다. 한국인은 문법과 발음에 과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콘텐츠다. 당신에게 콘텐츠가 있다면 도구의 품질은 크게 상관없다. 내 경험상으로 보자면 영어 발음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점은 발음이 좋은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문법과 발음의 노예였다. 그걸 벗게 된 건 영국서 잠시 살던 시절이다. "아륀지 좀 살까?"라고 했더니 영국인 친구는 "그래. 오렌지 좀 사자"고 말했다. "머대너 좋아해?"라고 물었더니 "마돈나 좋아해"라고 답했다. 오렌지는 오렌지고 마돈나는 마돈나다. 혀에 캘리포니아산 버터를 바른 척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미국 도시 산호세의 외래어 표기법은 여전히 '새너제이'다. 그게 딱히 원 발음에 가까운 것도 아니라는 오랜 지적에도 국립국어원은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머대너의 나라 미국 새너제이에 가서 아륀지를 사 먹는 것이다. 그렇게 발음해야 지나가던 백인 미국인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면서.
    기고자 :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5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