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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김지하는 암흑시대를 밝힌 촛불 하나"

    김미리 기자 윤수정 기자

    발행일 : 2022.05.09 / 종합 A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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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 "한때 헹가래 받았다가
    떨어져 냉담한 대접받는 사람 돼"
    유홍준 "민족 예술 1세대의 대부"
    정과리 "詩로 현실문제 적극 대응"

    김지하 시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문단 및 문화계 인사들은 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에게 김지하는 촛불이었고, 민족 예술 1세대의 대선배였으며, 한편으로 인간 생명을 재해석한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문화계 인사 4인의 육성(肉聲)을 싣는다.

    이문열(소설가): 젊은 시절 내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읽고서 보자고 해 만났다. 그때 난초 한 포기를 그려준 것이 첫 만남이었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내가 죽기를 바라는가 보다. 왜 죽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거 같다"면서 그는 괴로워했다. '한때 헹가래를 받으며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져 냉담한 대접을 받는 사람 기분이 이렇겠구나' 생각했다. 쓸쓸하고 슬프다.

    김훈(소설가): 암흑시대에 촛불 하나가 살아서 감옥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솔 출판사 김지하 전집에 그분에 대해서 연보가 자세히 나와 있다. 김지하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무진기행'의 김승옥 선생이 "나는 김지하와 서울대를 같이 나왔는데 이 사람은 빨갱이 아니다"라고 증언을 했다. 말년에 제3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많이 했고, 거기서 스스로도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승옥 선생, 선우휘 선생이 그분을 위해 탄원서를 참 많이 썼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시인, 민주화 운동 투사로서의 업적도 크지만 '민족 민중 예술 1세대의 대부'로서 우리 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분이다. 1960년대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을 중심으로 민족 예술을 이끌 후배들을 길렀다. 당시 교유한 이애주, 임진택, 김민기, 오윤, 김영동 등 소위 '김지하 사단'이 이후 춤·연극·미술·국악 등 각 예술 분야에서 김지하 미학의 각론을 폈다.

    정과리(문학평론가): 저항 반독재 투쟁 선봉에 섰던 분이다. 투쟁의 방식을 시를 통해 했고, 시가 바로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분이다. 후배들에게는 천진하면서 허심탄회했고, 달변이었다. 말년에는 외로운 심상이 시에 그대로 드러났다. '민족 시인'으로 축소되기엔 생명주의라는 강한 선이 그분의 시에 있었다. 그걸 온전히 밝혀 재평가하는 것이 한국 시문학의 중요한 관문이 될 것이다.
    기고자 : 김미리 기자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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