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터치! 코리아] '문화혁명 4인방'과 '검수완박 5인방'

    최경운 정치부 차장

    발행일 : 2022.05.07 / 여론/독자 A27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헌정사에서 '꼼수입법의 완결판'이란 비아냥을 낳은 민주당의 검수완박은 이른바 '5인방'이 주도했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는 회기 쪼개기 같은 꼼수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했다. 민주당 강경파 '처럼회' 소속 한 의원은 법안 처리를 위해 위장 탈당까지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표결을 위해 본회의 시간을, 문재인 대통령은 법안 공포를 위해 국무회의 시간을 조정해 꼼수 입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검수완박에는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했다. 그런 법안을 정권을 내놓게 된 세력이 임기 일주일을 앞두고 꼼수를 동원해 강행 처리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찾다 보니 46년 전 중국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죽음 이후 그의 아내 장칭(江靑) 등 문화대혁명(문혁) '4인방'이 주도한 '기정방침(이미 결정된 방침)' 사수 투쟁이 그것이다.

    1949년 공산 중국을 건국한 마오는 1966년부터 문혁으로 절대 권력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마오가 1976년 9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마오의 죽음은 그와 함께 문혁을 주도한 4인방에게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안겼다.

    4인방은 필사적으로 마오쩌둥 유지(遺旨)가 담긴 문서를 찾아 헤맸다. 이들이 문건을 손에 넣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4인방은 곧 관영 매체를 동원해 '기정방침대로 하라'는 선전전에 나섰다. 새 권력이 '과거사 청산'의 시동을 걸기 전에, 죽은 마오를 내세워 방탄 막을 만들려는 꼼수였다.

    4인방이 이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오는 생전에 홍위병들에게 "여러분의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며 문혁에 불을 댕겼다. 마오의 '조반유리(造反有理)'다. 이후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다. 마오의 죽음보다, 수많은 반대자를 만들어낸 마오 권력에 대한 심판이 4인방은 두려웠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 5년은 어땠나. 문 대통령 취임 직후 한 언론을 통해 서울중앙지검장 돈 봉투 만찬 사건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이 검사장은 옷을 벗었다. 그는 561일 만에 법원에서 면직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기무사 계엄 문건이 발견됐다며 특별 수사 지시를 내린 일도 있었다. 지지자들이 "쿠데타 모의"라고 들고일어났지만, 검찰 수사 결과 '쿠' 자도 찾지 못했다. 국민 분노를 자극해 권력의 동력을 얻는 한국판 조반유리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더니 민주당은 정권을 내놓게 되자 서둘러 검찰의 정치인, 선거 사범 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을 꼼수로 밀어붙였다. 심판의 칼이 들어오는 걸 막으려 '기정방침' 꼼수극을 벌였던 문혁 4인방과 닮았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을 없애도 한국식 FBI(중대범죄수사청)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중수청 설치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검찰에 한시적으로 부여한 2대 범죄(경제·부패) 수사도 부실해질 게 자명하다. 곧 권한을 내놓아야 할 일에 전력을 다하는 조직은 드물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국가 기능 작동을 '보류(hold)' 하거나 '방치'(no action)해 무력화한 것이다.

    '20년 집권론'을 내세운 민주당 당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압승하자 "국민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며 이른바 '개혁 입법' 추진을 외쳤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다시는 압도적 과반 의석을 얻기 어렵다고 보고 정권 임기 중 쟁점 입법 처리를 재촉한 것"이라고 했다. 마오 사후 4인방의 권력 사수 투쟁은 28일 만에 중국 신권력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며칠 후 정권을 내놓는 민주당 5인방이 꼼수로 밀어붙인 기득권 사수전의 결말이 궁금하다.
    기고자 : 최경운 정치부 차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9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