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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만 보고 비교·경쟁하면… 극락에 살아도 불행하다 느끼는 법"

    광주광역시=김한수 종교전문기자

    발행일 : 2022.05.06 / 문화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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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오신날… 광주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 인터뷰

    광주광역시 무각사(無覺寺) 대웅전 앞마당엔 대형 백련(白蓮)이 피었다. 5월의 신록을 배경으로 잔디밭에 설치된 지름 5미터가 넘는 흰 연꽃 조형물은 재독 미술가 김현수(67)씨의 작품. 그러나 이 백련은 미완성이다. 부처님오신날(8일) 저녁, 사람들이 둘레에 서서 108배(拜)를 올릴 때 완성되는 작품이다. 간절한 정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이다.

    무각사가 그렇다. 이 사찰은 최근 15년에 걸친 불사(佛事) 끝에 대웅전 삼존불의 점안식을 마쳤다. 주지 청학(69) 스님은 2007년 비가 새는 절에 주지로 부임해 15년 만에 무각사를 광주의 대표적 도심 사찰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대변신시켰다. 그러나 청학 스님은 "건물은 기도하는 집일 뿐, 사람과 신심(信心)이 채워져야 진정한 불사"라고 말했다.

    ―송광사 향봉, 구산, 법정 스님과 인연이 각별하시지요. 어떻게 출가하셨나요.

    "젊은 시절 여러 곳을 방랑했습니다. 하루는 송광사에 묵게 됐는데, 다음 날 아침 '방장 스님께 인사 드리고 가라'는 거예요. 구산 스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대뜸 '어디서 왔는고?' '무엇이 왔는고?' '네가 어디 있는고?' 잇따라 물으시고는 '주인공을 찾으라' 하셨어요."

    ―선문답(禪問答)을 하신 셈이군요?

    "얼떨떨한 마음에 법정 스님이 계시는 불일암으로 가봤어요. 저녁 무렵이었는데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계시더군요.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문득 '저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여쭸어요. '밖(사회)에서 잘못한 일 있느냐'고 물으셔서 '없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주민등록 있으면 됐다. 큰절에 이야기해주겠다'고 해서 그날로 행자 생활 시작했습니다. 1976년입니다. 그렇지만 처음엔 출가자로서 자신이 안 생겨서 3년 행자 생활 하다 향봉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습니다."

    ―어른 스님들께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구산 스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구산 스님은 제도권 학교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당당하면서 동시에 수행엔 그렇게 간절하실 수가 없어요. 말씀보다는 삶 전체, 절 용어로 '살림살이'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당당함과 간절함으로 대중을 포용해 대가람을 이끄셨지요."

    청학 스님은 출가 초기 송광사와 통도사 선방(禪房) 등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다가 1980년대부터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법정 스님을 수련원장으로 모시고 수련국장을 맡아 송광사 수련회를 전국 조직으로 확산했고, 김영한(1916~1999) 보살로부터 법정 스님이 시주받은 서울 성북동 대원각을 길상사로 변모시켜 초대 주지를 지냈으며 프랑스 파리 길상사를 개원하는 데에도 실무를 도맡았다. 2000년대 초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을 맡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안착시켰다.

    2007년 당시 무각사는 존폐 위기였다. 주지로 부임한 청학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세 번씩 기도를 시작했다. 주지가 바깥출입을 끊고 항상 절에서 기도하니 신도들이 돌아왔다. 목탁은 숱하게 깨져 나갔고, 휴대전화는 쓸 일이 없어 처음엔 벽장에 집어넣었다가 아예 없앴다. 첫 번째 1000일 기도가 끝난 후에야 '불사(佛事)'를 시작했다. 불사 순서도 먼저 갤러리와 서점 등을 열어 문화예술이 깃들게 한 후 법당 공사는 마지막이었다. 불자가 아닌 시민들까지 무각사를 찾기 시작했다. 무각사는 청학 스님에겐 무문관(無門關)인 셈이었다. 기도는 총 3500일 동안 이어졌다.

    ―무각사 변신과 관련해 스님의 간절한 원력(願力)은 스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신도님들이 절에 오는 것은 바깥세상에서 얻지 못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항상 절에 있으면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시주받아서 밥 먹는 출가자의 일이지요."

    ―코로나 사태는 '나'와 '너'가 둘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코로나는 모두가 아픔과 슬픔을 나눠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줬습니다. 코로나가 심할 시기엔 저녁 6시 기도는 저 혼자 했습니다. 혼자 기도할 때 고마운 분들, 어려움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바랍니다.

    "점안식 마치고 제주도에 갔다가 하루는 아침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바닷가에서 먹었습니다. 잔잔한 파도 소리 들으며 산들바람 맞으며 먹는데 그 어떤 비싼 식당에서 비싼 밥 먹는 것보다 행복했는지 몰라요.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극락 속에 살면서 극락인 줄 몰라요. 저는 여행 가면 한구석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대부분 바쁘게 지나가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요."

    ―어떻게 해야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요.

    "한 가지씩 단순한 일을 정해서 반복 연습해보세요. 단순한 일을 지속하면 고요해집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몸에 밴 나쁜 버릇, 습(習)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을 지속해서 훈련하면 습을 끊을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일, 예를 들어주시지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은 호흡 관찰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숨 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소 호흡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1부터 100까지, 또 100에서 1까지 거꾸로 헤아려 보세요. 그런데 막상 해보면 순간순간 딴생각이 날 겁니다. 하루에 한 번씩만 빼먹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고요해진다는 걸 느낄 겁니다. 고요해지면 내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곧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 모두가 존귀하고 고귀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밖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밖을 바라보며 비교하고 경쟁하고 시비하기 때문에 극락에 살면서 지옥이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바로 앞이 아니라 멀찍이 바라보면서 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곁의 꽃이 예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기고자 : 광주광역시=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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