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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컬처체인저] (6) 장르문학 SF로 부커상 최종후보 오른 정보라

    윤수정 기자

    발행일 : 2022.05.05 / 문화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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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한 적도 없는데 부커상 후보… 난 사기꾼인가봐요"

    오는 26일 영국 최고 권위의 세계 문학상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 발표된다. 최종 후보 6명에는 한국 작가 정보라(46)와 소설집 '저주토끼'가 올라 있다.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정 작가 역시 비슷한 경험을 최근 한 달 새 집중적으로 거쳤다. '저주토끼'는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기존 출간됐던 7개국에 이어 인도, 미국, 브라질, 알바니아 등 10개 나라 판권 수출이 확정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한국문학의 전통적인 등단 제도를 전혀 거치치 않았다는 것. 2003년부터 24권의 책을 냈지만, 절반 이상이 번역가로서 낸 러시아 문학 번역서다. 국내 유력 문학상 수상 이력도 전무. 2018년 와우북페스티벌 가판대에서 '저주토끼'를 발견한 한국인 번역가 안톤 허(안정범)가 영어 번역을 제안하고, 함께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그의 이름은 무명에 가까웠다. 정 작가는 "세계가 멸망해서 없던 일이 되면 어떡하죠?"라며 웃었다. 그만큼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커상 후보 지명, 언제 실감 나나.

    "전보다 장편 원고 청탁이 많다. 현재 3기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에 장르문학 특집 기획 제안도 들어왔다. 여러 SF 작가들과 함께 글을 게재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 한편으론 글 쓸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마감의 압박은 커지고, 카메라를 무서워하는데 언론 인터뷰가 잦아졌다. 어제 점심에 하고, 오늘 아침에 또 하는 식."

    ―안톤 허의 번역본, 당신의 원작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단편 '안녕, 내사랑'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인공 반려자 '1호'의 성별을 남성으로 생각했지만 특정하진 않았다. 번역본에선 '여성(She)'이 됐다. 한국어는 성별을 불분명하게 말할 때가 많은데, 영어는 특정해서 말할 때가 많다. 그걸 감안해 색다른 색깔을 입힌 번역가의 해석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론 번역도 2차 창작에 속한다고 본다."

    ―공식 등단은 실패한 건가 아니면 택하지 않은 건가.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글'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예창작과 교육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길처럼 느껴졌다."

    20년 전쯤 문예지에 한번 글을 냈지만 많은 수정을 요구받았다. "샴푸의 제조 공식을 주면서 향이 더 좋은 샴푸를 만들라는 말처럼 느껴져 그만뒀다"고 한다. "그걸 폄하하는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도 있어 절박하지 않았다. 배가 불렀던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정 작가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럼 왜 꼭 SF였나.

    "독자분들께 이 기회를 빌려 사과드린다. 전 사실 SF 사기꾼인 것 같다.(웃음) 2014년 제1회 SF 어워드 대상도 아닌 단편 부문 우수상을 탔다. 이후 SF 관련 기고 청탁이 많아졌고, 난데없이 SF 작가가 됐다. 이번 부커상 저주토끼 심사평이 '잔혹한 현대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부각했다'였다. 정작 난 원고료 준다고 해서 SF 쓰게 된 건데 어쩌지 했다. 하하."

    ―본인 소설에 SF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일단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험하는 '사변소설'. 아니면 호러소설."

    ―왜 호러인가.

    "인생이 사실 호러잖나. 올해 초 울진에 대형 산불이 났을 때 강원도 사는 친구가 매일 하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저 멀리 산불이 보이고, 새까만 연기가 보인다고. 우리가 안온하게 산 탓에 기후변화가 더 심해졌고, 친구가 본 산불을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됐을 거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일상에 대한 그런 불안이 내 소설에도 담겼다."

    세월호, 철도민영화 반대, 홍콩 민주화 등 다양한 주제의 집회를 다니는 게 취미다. 부커상 후보 지명 소식을 듣던 날도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 현장에 있었다. "집회가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안온한 내 일상의 껍질을 깨고 여러 고민을 하게는 해준다"고 했다.

    ―왜 취미가 '데모'인가.

    "사실 데모 해봤자 바뀌는 건 없고, 항상 둘 중 하나다. 춥거나 덥거나. 집회 생각하면 허리부터 쑤신다. 그래도 집회 장소에 가면 글자 그대로 '세상 전체가 다 와있다'고 느낀다. 노조원부터 외국인들까지, 내가 갔던 집회에선 모두가 서로를 도왔고, 그러면서 나도 도움받았으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다녔다."

    정 작가 자신에게 문학은 '즐거움'이다. 그가 독자에게 주고 싶은 문학도 마찬가지.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즐거움, 혹은 긴장감과 스릴, 혹은 위안을, 때로는 기운을 얻는 장르였으면 한다."
    기고자 : 윤수정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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