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왕권 계승

    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발행일 : 2022.05.04 / 특집 A32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여자는 왕(살리카법)이 될 수 없다"… 英·佛 백년 전쟁 불렀죠

    올해로 19년째 집권하고 있는 리셴룽(70)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달 자신의 후계자로 로런스 웡(49) 재무장관을 지명했어요. 싱가포르는 1959년 이후 지난 63년간 단 3명만 총리 자리에 올랐는데요. 총리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현직 총리가 물러나기로 결정하면 후임자를 물색하기 시작하죠.

    싱가포르에서는 의회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돼요. 그런데 당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투표를 거치지 않고, 재임 중인 총리와 지도부가 논의해서 뽑아요. 초대 총리인 리콴유, 권력 이양으로 2대 총리가 된 고촉통, 리콴유의 장남이자 3대 총리인 리셴룽 모두가 이렇게 총리직을 물려받은 여당 인민행동당(PAP) 출신이에요.

    이런 선출 방식 때문에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의 정치 체제가 '유사 민주주의'라며 싱가포르를 '일당 독재와 권력 세습으로 유지되는 공화국'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역대 총리들이 경제를 급속도로 발전시켰고 이번 코로나 방역에도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등 안정적인 지도력을 보이면서 국민으로부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번 총리 후계자 결정 과정이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리셴룽 총리는 2018년 16개 정부 부처에 젊은 정치인 10명을 임명하고 '4세대(4G) 그룹'이라 부르며 누가 차세대 총리로 적합한지 지켜봤죠. 그리고 총리 지명 전에는 3주간 주변 고위직 정치인 19명을 만나 1시간 이상 심층 면담하며 누가 차기 총리로 적합한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고 해요. 그 결과 15명의 선택을 받은 웡 장관이 낙점된 거예요.

    역사적으로 국가마다, 문화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 이양이 이뤄졌는데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자를 정하고 권력을 지켰는지 살펴볼까요?

    현자에게 황제 자리 넘긴 로마

    싱가포르처럼 과거에도 국가 최고 권력자 자리를 '현자'(賢者)에게 이양해 국가를 더욱 발전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의 전성기인데요. 이때 군림했던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다섯 명을 '5현제'라고 불러요. 이 시기를 '5현제 시대'(96~180)라고도 하죠. 이들의 온건하고 자비로운 통치로 각지에 로마식 도시가 건립되고 이탈리아 반도 외의 로마 영토인 속주(屬州)들도 로마의 문화를 누릴 수 있었죠.

    이들은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겼는데요. 사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한 황제들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아예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아들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위가 이뤄진 측면이 있기는 해요. 이들은 친인척이나 눈에 띄는 군인·정치인을 양자로 삼아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양했어요. 예컨대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당시 가장 존경받던 정치인 중 한 명이었는데, 속주의 총독과 집정관을 역임하며 뛰어난 능력과 인품으로 하드리아누스의 신임을 받아 양자가 됐답니다.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아들인 코모두스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줬는데요.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코모두스 때문에 로마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답니다.

    장자 상속과 말자 상속

    역사 속 대부분의 왕조들은 '장자'(長子) 상속의 원칙을 지켰는데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게르만족의 관습법인 '살리카법'이 꼽힙니다. 프랑크 왕국 때 만들어진 법전으로 프랑크족의 주류였던 살리족(族)의 이름을 땄는데요. 이 법은 부계 남성의 상속을 우선으로 하며, 여성의 상속은 금지한 법이에요. 동아시아의 비슷한 제도로는 중국 주나라의 '종법(宗法)제'가 있어요.

    이런 법들 때문에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왕위 계승 분쟁이 잦았는데요. 각국 왕실 간의 중첩된 혼인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중 하나인 '백년 전쟁'(1337~1453)은 프랑스의 왕위를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전쟁이죠. 프랑스를 다스리던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왕조의 혈통이 끊기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은 영국의 왕인 에드워드 3세였는데, 그는 샤를 4세의 누이 이저벨라의 아들이었어요.

    하지만 살리카법 때문에 모계 쪽 왕위 계승권은 인정되지 않았어요. 이에 프랑스 왕실에서는 샤를 4세의 사촌 형제인 발루아 백작을 왕으로 옹립했어요. 그는 필리프 6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후 왕권이 강해지자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가 가지고 있던 프랑스 내의 영지 지배권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영국의 왕은 프랑스 왕위 계승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켰어요.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났죠.

    이 전쟁으로 오랜 시간 귀족들이 왕을 위해 힘을 모으면서 프랑스의 왕권은 강해졌어요. 또한 살리카법에 반대하며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했던 영국에서는 여왕이 즉위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서는 여왕이 탄생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초원을 누비며 계속 이동 생활을 해야 했던 유목 민족들은 반대로 '말자'(末子) 상속의 원칙을 지켰어요. 가장 먼저 성년이 되는 장남부터 부모가 갖고 있던 가축 일부를 받아 분가했어요. 가장 마지막에 부모 곁에 남게 되는 막내가 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남은 재산과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영역을 상속받는 게 일반적이었답니다.

    술탄 자리 두고 형제 죽인 오스만제국

    오스만제국에는 최고 집권자인 술탄 자리를 놓고 형제들끼리 경쟁하는 전통이 있었어요. '술탄 계승권'을 가진 아들들은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파견돼 각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어요. 아버지가 죽으면 이들은 군대를 끌고 와 형제들끼리 힘을 겨뤘고, 가장 먼저 수도에 입성하는 사람이 술탄이 되었지요. 1403년 술탄인 바예지드 1세가 사망한 후에는 그의 아들 네 명이 10여 년이나 내전을 벌이기도 했어요.

    메메트 2세는 아예 "술탄의 자리에 오를 사람은 형제를 죽여도 된다"는 법을 만들었는데요. 사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새로 즉위한 술탄들은 형제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답니다. 16세기에 오스만제국에 주재했던 오스트리아 대사 오기에르 기셀린 드 뷰스벡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오스만제국 술탄의 아들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입니다. 한 명이 아버지의 뒤를 이으면 나머지는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애초에 위협이 될 만한 형제들은 모두 숙청됐기 때문에 새로운 술탄은 안정적인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해요. 또한 왕족 출신의 귀족 가문도 형성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 벌어졌던 왕위 계승 전쟁인 장미 전쟁(1455~1485) 같은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죠.

    17세기부터는 술탄이 후사 없이 죽었을 때 생기는 공백을 막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지 않고 '카페스'라는 궁전 감옥에 감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오스만제국의 왕족들은 자유는 잃었지만 목숨은 지킬 수 있었던 거예요.

    [살리카법 폐지하는 국가들]

    1316년 프랑스의 루이 10세가 사망한 후 동생인 필리프 5세가 왕위를 찬탈해 즉위했어요. 그런데 루이 10세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고, 이 때문에 정통성이 떨어지는 불안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는 프랑크 왕국(5~9세기) 이후 잊혔던 살리카법을 찾아낸 뒤 여성은 상속권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도 딸들만 남기고 죽어 동생 샤를 4세가 왕위에 올랐답니다.

    20세기 유럽에서는 양성평등 사상이 확산되며 왕실의 살리카법을 폐지하는 나라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스웨덴 왕실, 벨기에 왕실 등은 아들·딸 구분 없이 맏이가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 맏이 상속제'를 택하고 있답니다.
    기고자 : 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383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