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같은 학교 학부모라도 A 아파트 엄마들끼리는 단체 채팅방이 아예 따로 있대. 애들한테는 'B 아파트 애들하고 놀지 말라'고 얘기까지 한대."

아는 언니가 동네 아파트에 떠도는 얘기를 전해줬다. 처음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다. "진짜라니까? B 아파트 사는 친구가 속상하다면서 한 얘기야. A 아파트 애들이 진짜로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는 것 같아서 그 집 애가 의기소침해진 모양이더라." 언니가 정색하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강 북쪽에 자리 잡은 A 아파트와 B 아파트는 대로를 사이에 둔 '한 동네 아파트'다. 두 아파트 아이들은 통상 같은 초등학교에 배정되고, 부모는 같은 대형 마트와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오며 가며 부딪친다.

차이가 있다면 준공 시점과 가격이다. A 아파트는 2019년 준공한 새 아파트로, ㎡당 매매가가 1700만원쯤이다. 2005년 지은 B 아파트는 ㎡당 1400만원쯤이다. 만약 크기가 80㎡로 같다면 A 아파트는 대략 13억9000만원, B 아파트는 11억4000만원이 된다.

언니가 전해준 '동네 괴담'이 사실이라면, 이 2억5000만원의 차이는 놀지 말아야 할 친구와 놀아도 되는 친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 셈이다. 2억5000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계급을 나눌 만큼 큰돈도 아니라고 보기에 언니와 언니 친구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파트 괴담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A 아파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B 아파트 사람들이 괜한 자격지심에 낭설을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곱씹는 것은, 이런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집은 어느새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가 됐다. 최근 몇 년 새 아파트 값은 사람들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뛰었다. 평범한 2030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얘기하면 뺨 맞는 시대가 됐다. 버스비 아껴가며 기신기신 돈을 모아서는 살 수 없는 게 내 집이다.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다면 거짓말 좀 보태서 인생의 과업을 다 이룬 셈이 된다. 그러니 '고작' 2억5000만원 차이로 계급이 갈렸다는 얘기에 '설마'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것이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명쾌해진다. 확실한 건 A 아파트나 B 아파트 주민 탓은 아니다.

"이 얘기 들어봤어? 요즘 어린애들 중에 비싼 아파트 사는 애들은 소셜미디어에 자기 아파트 이름을 해시태그로 단대. '저 이런 아파트 살아요' 자랑하는 거지." 복잡한 머릿속을 비집고 괴담이 또 하나 들려왔다. 아파트가 집주인의 자랑을 넘어서서 집주인 자녀의 정체성이 됐다는 소리다.

이번에도 '설마' 싶었지만, 직접 소셜미디어에 들어가 확인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귀신 나온다는 집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서 그냥 지나치듯, 나는 그냥 이 아파트 괴담을 외면하기로 했다. 기고자 : 최연진 산업부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49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