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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잃어버린 입맛도 되살린다는 도시에 영화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8일 저녁 영화 '애프터 양(After Yang)'으로 개막했다. 올해 출품작은 56국 217편(해외 123편). 규모와 오프라인 행사를 감안하면 코로나 이후 정상화된 첫 영화제다. 개막식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70%만 열었던 객석도 거리 두기 해제로 100% 오픈했다. 상상해보라. 관객이 꽉 들어찬 극장 풍경을.

'애프터 양'은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제이크(콜린 패럴)와 키라(조디 터너 스미스) 부부는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를 위해 안드로이드 로봇 '양'(저스틴 민)을 선물한다. 몇 년 동안 미카에게 중국 문화를 가르치며 오빠이자 가족 구성원처럼 살던 양이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 서비스센터를 찾아간 제이크는 양은 반품 기록이 있고 품질 보증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을 수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로봇에 저장된 기억과 시간도 발견한다. 그것은 불편하고 충격적이다.

'애프터 양'은 미니멀하고 아름다운 SF영화다. 양이 떠나자 혼란에 빠진 가족, 빈집처럼 휑뎅그렁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포착한다. 편리한 명령 체계로 유지되던 양과의 관계는 양이 사라지자 불안과 걱정으로 대체된다. '파친코'의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은 로봇이 양육과 정서까지 책임지는 이 가족을 배경으로 인간관계라는 주제를 깊이 들여다본다. 나무와 차[茶]로 인간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통찰이 빛난다. 음악은 몽환적이다.

중국에서는 19세기부터 나비를 수집하고 거래했다. 프로그래밍된 로봇의 죽음을 통해 이 영화는 말한다. 애벌레에게는 끝이지만 나비에게는 시작이라고. '토탈 리콜' '더 랍스터'의 배우 콜린 패럴은 이 영화에서 인생 연기라 부를 만한 솜씨를 보여준다. 양을 연기한 한국계 배우 저스틴 민도 인상적이다.

전주국제영화제(www.jiff.or.kr)는 5월 7일까지 CGV전주고사 등 5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에 비하면 독립적이고 덜 상업적인 영화들을 모았는데, 올해는 방역 수칙을 이행하면서 오프라인 행사를 정상화했다. 이날 전주돔에서 열린 레드카펫 이벤트와 축하 공연까지, 영화제도 3년 만에 일상을 회복했다. 낯설고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폐막작은 에릭 그래블 감독의 '풀 타임'.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에서는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과 신작 단편 '심장소리'를 선보인다. 올해의 프로그래머 연상호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가타야마 신조의 '실종' 등을 선정했다.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가 북적인다. 주말에 이 도시에서 영화와 식도락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추천작 기고자 : 전주=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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