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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영국 생활을 한 지 10년째다. 최근 100년 정도 된 집으로 이사했다. 런던에서 그 정도로는 오래된 집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전 주인은 거실 한구석의 벽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피면 집에서 가장 안락한 공간이 될 거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공간은 거실 벽난로보다는 현관 바로 옆 화장실이었다. 무척 작은 화장실이다. 변기 하나와 손 씻을 세면대만으로 꽉 찬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야말로 전 주인의 취향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투박한 타일이 벽의 아랫부분을 가지런히 감싸고, 그 타일 사이는 짙은 회색 줄눈이 채운다. 이 진회색은 벽의 위쪽과 화장실 문으로도 이어진다. 사용된 모든 색감과 질감이 조화를 이뤄서 단정하다. 아마도 전 주인은 시간을 둬서 세심하게 계획하고 적합한 자재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이전 집에 살 적에는 화장실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지금보다 네 배는 컸고 기능적으로도 딱히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날림 공사를 한 탓에 어느 곳 하나 단정하게 마감한 구석이 없었다. 특히 변기에 앉을 때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는 곳의 타일이 엉망이었다. 꾸역꾸역 붙였을 타일들은 삐뚤빼뚤했고, 처덕처덕 바른 줄눈이 넘친 채 굳어 있었다. '작업한 인부가 어지간히 일하기 싫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화장실에서는 변기에 앉는 일도 상쾌하지 않았다. 없던 변비도 생길 판이었다. 간혹 사소한 것도 영상처럼 마음에 뚜렷하게 남는다. 오래오래 남아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반대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화장실에서도 인생을 배운다. 기고자 : 황정원 '아무튼, 무대' 저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81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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