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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마다 적립금운용위 설치, 목표수익률 마련해야

금융권 1위를 향한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엎치락뒤치락 다툼이 한창이던 2019년, 두 회사는 당시 수익률이 1.0%까지 떨어진 퇴직연금 대수술을 다짐하면서 "IRP(개인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나면 수수료를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하나금융도 '마이너스 시 수수료 면제'를 외치며 따라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퇴직연금 수익률은 여전히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은행들이 수수료 면제 약속을 진짜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3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지지부진한 수익률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자, 정부가 억지로라도 잠자는 퇴직연금 깨우기에 나섰다. 지난 12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는 DB(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제도를 채택한 사업장은 적립금운용위원회를 꾸려 '목표 수익률'을 마련해야 한다. 퇴직연금 관리에 회사가 좀 더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또 퇴직연금의 법정 최소적립금 비율(퇴직금의 95%)을 못 채우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등 규제도 강화됐다. 퇴직금 최소적립금이란 기업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외부 기관에 적립해 놓는 자금을 말한다.

◇국민연금도 수익률 10% 내는데…

연금저축과 보험사의 연금보험, 변액연금과 함께 사적(私的) 연금의 또 다른 축인 퇴직연금이 작년 말 기준 295조6000억원으로 불었다. 하지만 무관심·무경쟁·무위험 '3무(無)' 속에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고작 2%에 그쳤다. 그나마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이 20%는 되는 DC(확정기여)형 상품이 2.49%, 원리금보장형이 대부분인 DB형은 수익률 1.52%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을 주거래 은행의 예·적금이나 보험 상품에 몰아넣다시피 했고, 금융회사들도 손실만 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용했다. 그 결과, 퇴직연금 수익률은 매년 1~2%대를 맴돌면서 임금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퇴직금 최소적립률이 90%를 밑도는 기업이 6만2306곳으로 전체의 56.1%에 달했다.

연금저축과 연금보험, 퇴직연금을 합친 사적 연금은 총 664조원 규모로 지난해 평균 1%대 수익률을 올렸지만, 949조원인 매머드 국민연금은 작년 10.8%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2019년(11.31%), 2020년(9.7%)에도 사적 연금 수익률을 압도했다. 안전 자산인 국내 채권 비율을 확 낮추고 해외 주식과 대체 투자 비율을 높이는 '골고루 배분 전략'을 쓴 덕분이다. 미국의 경우 IRA(개인퇴직계좌)에서 주식(43.7%)과 뮤추얼펀드(45.2%) 등 위험 자산 비율이 90%에 육박하고, 원금보장형인 DB형 계좌도 주식 비율이 30%가 넘는다.

◇수술대 오른 퇴직연금, 이제 돈 좀 불리나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등 사적 연금도 결국 국민연금과 비슷한 길을 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적립금운용위원회를 만들고 적립금운용계획서(IPS)도 내야 한다. 계획서에는 '2022년 목표 수익률은 ○%로 한다.' (제6조 목표 수익률), '위원회는 운용 성과가 현저히 부진하거나 위법 또는 부당한 운용으로 인해 적립금 운용의 안정성이 저해된 경우에는 운용 상품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11조 운용 성과의 평가)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또 하반기부터는 DC형과 IRP에 디폴트 옵션(사전 지정 운용 제도)도 도입된다. 이 제도는 가입자가 명확한 투자 지시를 하지 않을 때 사전에 가입자가 지정한 상품이나 포트폴리오(자산 배분)에 따라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수백조 원이 그저 잠자고 있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회사들이 퇴직연금을 적극 운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면서, 각 금융사는 퇴직연금 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적립금운용위와 IPS를 통해 자산배분안을 마련한 기업 중 약 30%만 외부 운용사에 위탁을 맡겨도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은 약 50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KB·삼성·미래에셋·한국투자신탁·NH아문디 등 자산운용사들은 현재 3~5%대 목표 수익률을 내건 OCIO 펀드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립금운용위 도입으로 DB형 퇴직연금 운용 전문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국내 퇴직연금과 국민연금, 해외 연기금 수익률 비교해보니

[그래픽] 퇴직연금 제도, 뭐가 달라지나 기고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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