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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 슬로우 호시스

세계적으로 첫손 꼽히는 정보기관인 영국 국내 정보국 MI5. 런던 모처의 '슬라우(Slough) 하우스'는 그 MI5의 시베리아 유배지 같은 곳이다. 정찰 임무를 망쳤거나, 극비 파일을 잃어버렸거나, 술에 절어 더 이상 정보 활동을 할 수 없는 '폐급' 요원들이 모여 있다.

첩보의 세계에서 '둔한 말(slow horses)'은 쓸모없다. 공항열차역 자살폭탄테러범을 놓친 요원 '리버' 도 핸드폰 감청 통화록이나 받아 쓰며 남은 세월을 보내야 할 처지. 그런 그가 뜻밖의 흉악한 납치 사건에 엮여 들고, 성질 더러운 늙은 첩보원 '잭슨'이 이끄는 슬라우 하우스의 요원들이 극우 테러리즘, MI5 내부 정치 게임과 음모의 소용돌이에 맞선다.

첩보원이 꼭 칼 같은 맵시의 정장 차림, 셜록 홈스의 두뇌, 007처럼 화려한 액션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다. 출세는 애당초 포기한 둔하고 꾀죄죄한 첩보원이면 어떤가. 스타일 좋고 부유한 권력자 악당을 끝내 잡아넣을 수만 있다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촘촘하며, 영국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가끔 깜짝 놀랄 만큼 잔인한 폭력적 장면도 등장한다.

존 르 카레에 비견되는 영국 스파이 스릴러 작가 믹 헤런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 6부작 드라마의 끝까지 '몰아보기'를 멈출 수 없게 하는 텍스트의 힘이 탄탄하다.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리 올드먼이 맡은 슬라우 하우스 책임자 '잭슨'과 냉혈한 MI5 부국장 '다이애나'를 맡은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연기 대결도 볼거리다.

클래식 - 서울시향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서울시향은 21~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을 앞두고 덴마크 지휘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출연 불가를 통보하자 비상이 걸렸다. 발을 동동 구른 끝에 러시아 출신의 바실리 페트렌코〈사진〉를 대체 지휘자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페트렌코는 2006~2021년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을 이끌면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음반들로 세계 음악계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 로열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21~22일에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키릴 게르스타인)과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국악 - 여민동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악 악보는 세종실록에 있다.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는 여민락(與民樂) 역시 여기에 실려 있다. 당초 용비어천가를 노래하기 위한 곡이었지만 지금은 기악곡으로 연주된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21~2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여민락만(與民樂慢)'과 '여민락령(與民樂令)' '여민락'과 '해령(解令)'을 들려주는 '여민동락(與民同樂)' 공연을 연다.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궁중 행사 등에서 연주된 음악. '해령'은 '여민락령'을 변주해서 만든 곡이다. 송지원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이 해설을 맡는다.

연극 - 네이처 오브 포겟팅

55세 생일날 "주머니에 빨간 넥타이가 있는 남색 재킷을 입으라"는 딸의 말을 기억하지 못한 채 빨간색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힌 남자. 무심코 교복을 입고 가장 아름답고 아팠고 찬란했던 순간으로 휩쓸린다. 기억이 사라진 순간에도 영원히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 연극은 대사보다 움직임으로 속을 채운 피지컬 시어터다. 사랑과 결혼, 딸의 어린 시절 등 인생을 몸으로 표현한다. 책걸상을 이용한 춤, 옷들이 공중 부양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김지철·김주연 등이 출연하고 라이브 밴드가 있다. 30일까지 성수역 앞 우란문화재단.

발레 - 해적

지중해 연안의 한 어촌을 배경으로 정의로운 해적들이 악덕 부호에게 노예로 팔려간 그리스 소녀들을 구출하는 이야기. 마리우스 프티파가 영국 시인 바이런의 동명 서사시를 바탕으로 안무한 버전을 송정빈이 재안무했다. 빠르고 박진감 넘치며 역동적인 국립발레단의 클래식 레퍼토리. 폭풍우로 열리는 서막, 흥청대는 아라비아풍의 노예 시장, 바다가 바라보이는 동굴에서 해적들이 펼치는 춤 등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박슬기·심현희·조연재·이재우·허서명·김기완 등이 출연한다. 20~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