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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이 옮겨간 뒤 청와대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넓은 잔디밭과 정원은 멋진 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문제는 푸른 기와집과 부속 건물들이다. 언뜻 대통령 기념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이곳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쉽게 결론 낼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말문을 여는 의미에서 하나의 제안을 하고 싶다. 이곳을 국가 대표 도서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필자는 세계의 훌륭한 도서관 100여 개를 탐방했다. 선진국일수록 국가 대표 도서관의 위치와 건물이 특출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럴까? 지식과 정보가 국력이 되고 인간 행복의 원천이 되므로 그 상징인 도서관에 존경심을 부여한 것이다. 또한 수만 년 축적된 인류의 지식과 지혜의 가치를 아는 고품격 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도서관 역시 세계 최강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미국 의회도서관만 있으면 모든 것을 복원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회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지식 정보를 수집, 저장한다. 이 도서관은 권력의 상징이자 국가 중심축인 내셔널 몰의 연장선상인 의회 바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는 미테랑 전 대통령이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사업인 그랑 프로제(Les Grands Projets)의 일환으로 무려 12억 유로(약 2조원)를 들여 센 강변에 20층짜리 건물 네 채가 책을 반쯤 펼친 모습으로 네 귀퉁이를 차지하는 초대형(합계 80층) 국립도서관을 지었다. 문화 대국의 자부심을 '위대한 지식의 탑'으로 과시한 것이다.

영국은 뉴 밀레니엄 기념 사업으로 대영박물관 안에 있던 대영도서관을 런던 시내 중심 킹스크로스역 가까이에 새로 지어 독립시켰다. 이 역 '9와 4분의 3' 플랫폼은 해리 포터가 열차를 타고 마법학교인 호그와트로 떠난 곳으로, 도서관은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곳임을 암시한다.

사회주의권도 마찬가지. 러시아 정신의 보고인 국가도서관은 권력의 심장부 크렘린궁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권력과 지식 정보의 공존을 상징한다. 북한의 인민대학습당은 김일성광장 주석단의 병풍 역할을 한다. 10층짜리 전통식 청기와 팔작지붕 건물로 대동강을 향해 학이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우리도 청와대의 역사성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상징성과 생산적 기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현 국립중앙도서관은 위치로 보나 건물로 보나 경제·문화적으로 세계 속 한국의 국격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 대통령 집무실 소임을 다한 푸른 기와집을 국가 대표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켜 국민에게 돌려드리면 좋겠다. 이것이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에도 부합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빅데이터 경쟁의 시대이다. 빅데이터는 국민 개개인이 일상생활을 통해 시시각각 생산해낸다. 그것을 얼마만큼 수집·활용하는가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개인의 기억은 죽음과 함께 소멸한다. 그래서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국민의 경험과 기억, 스토리와 상상력까지 축적하는 국민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도서관은 청년들이 낮은 자리에서 땀 흘리며 미래 비상을 꿈꾸는 곳이다. 지식 정보를 수집·축적하고, 후세에 전승하는 곳이다. 청와대를 초현대식 도서관으로 만들어 국가 미래를 창출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면 경복궁 안 옛 집현전(수정전),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세계 유일의 책을 든 왕의 동상)과 축을 이루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권력은 짧고 지식은 길다. 기고자 :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세계도서관기행'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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