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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이었다.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갔다. 외환위기 직후였다. 미국 달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캐나다 달러는 견딜 만했다. 영어 학원은 한국과 일본 학생들로 가득했다. 선생이 하나 있었다. 일본 문화 예찬론자였다. 일본 학생과 한국 학생을 차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한국 학생도 진저리를 칠 만큼 명백하게 차별했다. 1998년의 한국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일본과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국가였다.

어느 날 그 선생은 일본 국기가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다운지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았다. 한국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 학생이 선생의 말을 끊고 말했다. "코리안 플래그 이즈 올소 뷰티풀."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초급반 학생이 영어로 풀이하기에 태극기의 의미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답답해하던 학생이 외쳤다. "두 유 노 건곤감리?" 건곤감리라니 맙소사. 그런 한국 단어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상한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 식의 반응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국력이 다르니 선생의 편견도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다. 나는 곧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들과 있으면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내심 기뻤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기쁨을 내심 경멸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 친구가 미국 교포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댓글로 남겼다. 한국 문화는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 덕에 한국인들은 90년대 일본인들이 받던 호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다른 아시아 학생들이 한국인인 양 군다고 했다.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또 다른 국가의 문화가 주류로 부상할 것이다. 한국이 받는 조명을 대신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방식으로 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만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1998년 밴쿠버의 영어 학원에서 내가 느꼈던 복잡한 경멸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한국인은 마침내 오랜 자기혐오를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자아도취에 빠져도 괜찮은 시기에 당도한 것이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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