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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한은이 쓴소리를 하지 않으면 경제가 망가진다

    방현철 경제부 차장

    발행일 : 2022.04.07 / 여론/독자 A3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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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지난달 조용히 연 세미나 주제가 국민소득 중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라는 지표 개선이었다. 누구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지표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핫 이슈' 중 하나다.

    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이던 홍장표 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학자 시절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있다며 노동 몫을 높이는 분배 정책으로 총수요를 늘리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근거해 '소득 주도 성장'이 등장했고, 그가 키를 잡았다.

    그런데 한은 공식 통계는 다른 스토리다. 한은 홈페이지에서 국민계정 밑의 노동소득분배율 항목을 클릭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2000년 58.1%에서 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62%로 오히려 오르고 있었다. 1953년 이후 그래프를 그리면 상승 추세가 분명하다.

    한은 집계의 노동소득분배율도 허점은 있다. 사장이면서 자신도 일을 하는 자영업자 소득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그래서 학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수정해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하고, 학계에서 논쟁도 한다.

    하지만 국가 정책의 근거가 되는 건 다른 얘기다. 감이 아니라 공식 데이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데 노동소득분배율 통계를 책임지는 한은은 그동안 모르는 척했다. 대선이 끝난 이제야 제대로 지표를 보완하겠다고 한다. 올 6월에나 새 지표가 추가된다고 한다.

    이 문제는 그간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많이 지적했다. 유 의원을 만났더니 "3년 전부터 지적했는데 한은이 침묵을 지키다가 정권이 바뀌니 이제 바꾸는 척하는 것"이라며 "한은의 직무 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은이 침묵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소득 주도 성장' 한다며 2018~2019년 최저 임금을 30% 가까이 올려 자영업자를 사지로 내몰고 저임금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550만 자영업자는 코로나 직격탄까지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됐다.

    미국에선 중앙은행이 긴축을 꺼리는 대통령 비위를 맞추다가 경제를 망가뜨렸던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 경제 고문을 하다 연준 의장이 된 아서 번스 얘기다. 1973년 오일 쇼크로 유가가 뛰자, 번스는 중동 전쟁 탓이고 통화 정책과 무관하다며 휘발유 값 등은 소비자물가에서 빼야 한다고 했다. 그해 엘니뇨 등 이상기후로 곡물 값도 뛰자, 날씨 탓을 하며 쇠고기, 돼지고기 등도 물가 계산에서 빼라고 했다. 빠진 석유와 식품 가격 등은 소비자물가 내 비율이 36%나 됐다. 그렇게 '근원(core) 소비자물가'란 지표가 탄생했다. 하지만 숫자를 바꾼다고 뛰는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국 경제는 고(高)인플레에 경기 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구렁텅이에 빠졌다. 결국 번스 이후 폴 볼커가 연준 의장이 되어 금리를 연 20% 가까이 올리고서야 인플레를 잡았다.

    중앙은행이 '듣기 편한 말'만 하면 경제는 망가질 수 있다. 한은 앞엔 무거운 과제가 있다. 미 연준이 40년 만에 닥친 인플레에 대응하려 올해 강력한 긴축 정책을 예고했다. 얼마 안 있어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을 넘어설지 모른다. 우리는 미국보다 금리가 높아야 자금 유출 우려를 던다. 우연인지 몰라도 한미 금리가 역전된 이후엔 어김없이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경제 위기 등이 덮쳤다. 과연 이창용호(號) 한은이 "좀비 기업을 솎아 내고 경제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닥쳐올 위기를 견딜 수 있다"고 쓴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도 한은이 줏대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기고자 : 방현철 경제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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